[헤럴드경제=이윤미 선임기자]중국의 역사 서술은 사마천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사마천은 역사 기술의 새로운 전범을 마련했다. 사마천이 쓴 본기, 세가, 표, 지, 열전으로 구성된 기전체 방식은 그 이후 역사 서술의 표준이 된다.

사마천의 ‘사기’ 연구 전문가인 장다커가 쓴 ‘사마천 평전’은 기존 자료를 섭렵, 사마천의 모든 행적을 치밀하게 살피고 해설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열장부는 모욕을 견디며 중임을 수행”…자신의 삶 투영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 5장까지는 사마천의 일생을 따라가며 그의 행적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사마천이 태어난 곳과 묻힌 곳을 마치 탐정처럼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궁형의 치욕을 사기를 씀으로써 견뎌낸 사마천이지만, 온전치 못한 육체로 조상들에게 돌아가는 것을 죄스럽게 여겨 고향의 선영이 있는 고문촌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서쪽으로는 선영을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황하를 바라보는 지천의 사마파에 묻혔다. 6장부터 마지막장까지는 ‘사기’에 초점을 맞춰 사상과 성취, 평가를 담았다.

‘사기’ 중 열전은 다양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로 일반인들이 좋아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사마천은 인물의 사적을 어떻게 선택했을까?

저자는 사기의 열전편은 단순한 장부 수첩이 아니라 뜻을 세워 선택하고 인물의 특징을 포착해 비슷한 것의 대표로 삼았다고 설명한다. 즉 전형적인 인물을 골랐다는 얘기다.

[헤럴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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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상앙의 각박함, 이사의 탐욕, 항우의 용맹함, 유방의 교활함, 한신의 지혜로움, 소하의 진중함, 장탕의 잔혹하고 각박함 등 인물 각각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파악한 후 재료를 선택하고 집중과 개괄을 진행해 인물의 형상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개성을 돌출시켰다는 평가다.

사마천이 특히 열장부로 꼽은 것은 욕을 견디며 중임을 맡은 지사이다. 모욕을 당하여 가볍게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사마천이 보기에 진정한 용사가 아니었다. 이는 역경과 치욕 속에서도 참고 버티며 중대한 임무를 수행한 그 자신을 투영한 것으로 보여진다.

저자는 사기의 예술적 특색을 뛰어난 산문 서사에서 찾는다. 일의 이치를 서술하는 데 뛰어나고 논점을 잘 녹 여낼 뿐 만 아니라 농후한 서정성과 풍자, 통속적이고 개성적인 언어를 특징으로 제시한다.

‘삼황’을 지운 후 “중화민족은 모두 화하의 자손“

사마천의 사상을 살핀 부분도 들여다 볼 만하다. 특히 모든 사람이 돈을 축적할 수 있다고 한 사마천의 경제사상은 경전에서 벗어난 이단이었으며 선배 사상가들을 넘어서는 탁월한 점이라는 평가다.

사마천의 역사관을 살피는 대목에선 논란이 많은 동북공정의 태도를 그대로 드러냈다. 중국 내 존재했던 모든 민족은 같은 화하족, 즉 한족이라는 논리다. 역사가 이덕일은 실체가 없던 한족을 만들어낸 게 사마천의 사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중국 역사는 삼황오제에서 시작하는데. 이중 삼황은 복희, 신농, 황제 등을 말한다. 이덕일은 사마천이 신농, 복희씨가 동이족임을 알고 삼황을 지우고 황제를 중국 역사의 시작으로 삼아 ‘사기’를 서술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저자는 “하·상·주 3대의 임금, 춘추 이래 열국의 제후와 진·한의 제왕, 사방의 민족은 화하의 자손이 아님이 없었다”면서 “중화 민족은 모두 화하의 자손이라는 일통의 관념은 바로 ‘사기’에서 기초가 다져졌다”고 평가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오제삼왕은 모두 일가이며, 이들이 바로 중화민족이라는 해석이다. 더불어 당나라 사마정이 사기가 빠트린 ‘삼황본기’를 보충한 데 대해 사족이라고 비판했다.

책은 사기 탄생 이후 오늘날까지 후세에 끼친 영향을 망라, 사기와 사마천을 이해하는 지침서로 삼을 만하다.

사마천 평전/장다커 지음,·연암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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