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삼성, 현대, SK그룹 모두 자사주 매입을 넘어 자사주를 소각을 발표했다. 대기업 그룹의 동참으로 자사주 소각 및 주주환원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국내 기업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을 해소하고 증시가 선진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현대자동차, SK는 잇달아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삼성물산은 주주가치 증대를 위해 5년간 2조9000억원 상당의 자사주 전량을 소각한다고 공시했다. 이는 전체 발행 주식의 13.2%에 달하는 수치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자사주 소각 행렬에 나섰다. 현대차는 지난 26일 컨퍼런스콜에서 발행 주식 1%에 해당하는 자사주 3154억원을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4일 1500억원어치 자사주를 매입해 전량 소각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아 역시 앞으로 5년간 매년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절반은 소각할 예정이다.
세 그룹 중 가장 먼저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곳은 SK다. 지난해 8월 자사주 2000억원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해당 매입분은 3월 이후 전량 소각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자사주 소각을 발표 이후 주가는 일제히 상승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발표 당일 주가가 각각 5.55% 2.65% 올랐다. 삼성물산도 16일 전날 종가 대비 3.77% 오른 11만5500원에 장을 마쳤다. SK 주가도 발표 다음 날 2.42% 뛰었다.
대기업 그룹사뿐만 아니라 상장사 전반에서도 자사주 소각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들의 주주환원 요구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이 부응하는 모양새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13일까지 올해 14개 기업이 15조5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발표했다. 같은 기간 기준 2022년 5개사 2100억원, 2021년 2개사 700억원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그간 국내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한 뒤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유동주식 수를 줄여 주주가치를 제고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자사주 교환이나 인적분할 후 신주발행을 통해 경영권 방어 목적에 사용했다.
증권가는 자사주 소각이 주가 부양을 이끌고 주주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발표가 주가 상승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매입 이후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주주들이 명확히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자사주 매입이 소각으로 이어진다면 주가의 저평가를 탈피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존 한국 대기업의 일회성 배당 증가나 자사주 매입은 해외 헤지펀드 공격에 대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었다”며 “보유 자사주는 기업분할이나 대기업끼리의 주주교환에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8년 지배구조 재편이 실패한 이후 현대차그룹에 대해 지배구조 재편 추진에 대한 의심이 반복돼왔다”며 “3사(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모두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으로 변화하면서 일반주주에게 불리한 지배구조 재편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