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재발견, 진짜 친구되기⑨
제2도시 제다의 어머니 격 원도심
메카로 가는 문 옆, 찬란한 문명 창출
히자스문명의 대표 아이콘 발코니예술
한복판에 압둘 아지즈 왕의 행궁 포진
아직도 거래하는 장터는 글로벌 만물상
[헤럴드경제, 제다 알발라드=함영훈 기자] 우리가 몰랐던 친구네 집, 사우디아라비아 주요도시 탐방과정에서 알울라 못지않게 인상깊었던 곳은 한국의 부산 역할을 하는 이 나라 제2도시 제다의 원도심, 사우디 서부해안 히자즈(Hijaz) 문명의 발상지, 바로 알발라드(Al Balad) 마을이었다. 동네가 통째로 유네스코세계유산이다. 발라드는 ‘타운(Town)’이라는 뜻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주거하기 시작한 것은 BC 6세기로 알려져 있고, 도시로서의 모습이 제대로 완성된 것은 AD 7세기로, 오늘날 제다 라는 대도시를 잉태한 어머니 같은 유적지이다.
알발라드 도보여행은 메카로 향한다는 뜻을 가진 마을 동쪽 ‘마카문(Makkah Gate)’에서 시작해도 되고, 바닷가 방향으로 난 서쪽문에서 해도 된다. 초행길의 경우, 해안도로로 가다가 차창 밖으로 히자스풍 옛건물들이 나오면 “아, 저기가 거기구나”라면서 내리면 서문 쪽에 가깝겠다.
일반적인 루트는 마카문과 그 바로 앞 ‘제다유네스코 유산보호구역’임을 알리는 마을 관문 ‘제다의 문’에서 시작한다. 중세 포르투갈과의 전쟁을 계기로 이들 문을 포함해 마을을 감싸는 성벽을 쌓았다. 지금은 제다문 옆에 맛보기로 성벽 일부를 복원해 두었다. 홍해의 산호암석을 깎아 벽돌로 만들었고, 화산폭발 때 생성된 현무암도 일부 들어가 있다.
이 마을 옛 건축물의 대표 아이콘은 외벽 바깥으로 70~100cm 튀어나온 히자즈(Hijaz) 스타일의 목재 발코니이다. 바로 ‘라와신’(Rawashin) 양식이다.
납작한 나무막대를 창틀에 겹겹이 끼워 채광과 통풍이 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이다. 사람의 얼굴과 몸이 노출되는 여닫이 혹은 미닫이 유리 창문 대신, 사생활 노출을 막되, 나무막대 사이로 세 방향의 바깥 풍경을 관찰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고층부에선 외부 노출 면적이 더 넓은 편이다.
이 히자스 스타일은 기단부, 몸체부, 왕관부(크라운) 상하 3단 창틀 구성인데, 성인 키보다 큰 것도 있고, 이 보다 작은 것도 있다. 왕관부는 어쩌다 한번씩 조금 뿌리는 빗물이라도 스미지않게 좀더 돌출했고, 헤드 부분인 만큼 구름다리형 아치 조각을 얹는 등 색다른 디자인으로 개성을 표출한다. 이 나무창틀형 발코니는 건물주의 사회적 위상을 과시하고, 미학적인 안목을 보여주는 알발라드 건축물의 대표 아이콘이다.
히자즈(Hijaz)는 홍해와 평행으로 달리는 산맥을 말하는데, 이 지역을 중심으로 번성한 문명, 왕국의 이름이다. 히자즈왕국은 1932년 통일 사우디아라비아를 건설하는 한축이 된다. 알 발라드가 고대~근세 홍해변의 중심도시였기 때문에 히자즈 건축양식의 진원지이다.
나무 색깔인 갈색이 80%쯤 되고, 연두색으로 칠한 가옥이 15%가량,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고동색 즉 지체높은 사람의 고택은 몇 채 보이지 않았다. 문화유산 보호구역이라 골목엔 전기차만 다닌다.
1~3층을 한 덩어리로 만든 ‘라와신’ 발코니를 가졌다면 건물 전체를 소유하는 부잣집이고, 사람이 올라설 수 있는 오늘날의 발코니 형태도 간간히 보이는데 이런 건물은 보존상태도 좋아 근세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진은 이곳을 두 번 탐방했다. 해뜨는 아침에는 한 개의 아치만 있는 서문쪽으로 들어가 중심부와 바다쪽 서쪽을 중심으로 관찰했고, 오후엔 동쪽 세 개의 아치가 있는 마카게이트 쪽에서부터 들어가 마을 서쪽까지 갔다가 출발지점 게이트 쪽으로 돌아나왔다.
아치형으로 꾸민 알발라드 원도심 서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아침부터 야윈 길냥이가 반긴다. 한창 유산 보존-복원작업이 진행중이라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줄어든 때문이리라.
입구부터 고풍스런 느낌의 건물들이 나타나는데, 창문도 없는 건물이 병풍 같은 문으로 굳게 닫혀있어, 개방성을 보이는 이 동네 다른 시장골목과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바닷가에 가까운 이곳은 알고보니 감출때는 감춰야하는 금(金)시장이었다.
양쪽으로 회랑이 있는 건물들이 고풍창연하게 도열한 곳을 지나 상인들이 도착하자마자 몸을 청결히 한뒤 기도 부터 했다는 모스크를 만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이곳 알발라드 모스크까지 물이 들어왔고, 중세 이후 간척사업을 한 후에도 주민과 거래처 사람 만이 배타적으로 드나들던 수로를 통해 이 모스크 근처까지 배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 모스크를 기점으로 마을 중심으로 진입한다. 센터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군주인 압둘 아지즈 왕의 행궁이었다가 오늘날 박물관 문화 센터가 된 나시프 하우스가 있다. 이후 역대 실권자들은 이곳에 히자즈 지역(사우디 서부) 제후들을 모아 국정의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상업 무역 중심의 히자즈(제다)와 정치 중심의 리야드는 역사적으로 묘한 경쟁관계였기에 통치자들은 집권 초기, 제다 등 홍해 일대에 신경을 많이 쓴 듯 하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곳에 와서는 진흥과 지원을 강조했고, 리야드에선 왕족들을 호텔에 모아놓고 시민에 대한 갑질 금지, 국정개혁 적극적인 협조 등을 당부해 눈길을 끌었다. 나시프 하우스 앞에는 수백년 된 나무가 여전히 초록잎 무성한 채 건재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있다.
지구촌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소크 알 알라위(Souq Al Alawi)’는 예나 지금이나 장터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 동쪽과 북쪽은 작업인부들의 모습만 보일 뿐 인적이 드문데 비해, 소크 알 알라위 골목에선 길거리 음식 뿐 만 아니라, 아라비아 보석, 이슬람 공예, 의류, 카페트, 골동품 등 다양한 물건들이 지금도 거래되고 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흥정은 필수이고, 상인이 첫 번째로 제시한 가격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관광청 스태프 조차 귀띔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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