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부지점장으로 일하던 여성 A씨는 점장 B씨의 잦은 연락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업무시간이 아닌데도 전화는 물론 ‘카카오톡’ 메신저로 호출하는 일이 늘었고, 나중에는 사적인 감정을 표현했다. 비타민제나 카시트, 블루투스 이어폰 등 B씨가 원하지 않은 선물공세를 펴기도 했다. 마음이 없던 B씨는 받은 물건을 버리거나 다른 직원들에게 줬다.
정도가 지나치다고 판단되자 A씨는 B씨의 고백에 대해 거절의사를 명확히 했지만, B씨는 오히려 A씨를 자주 면담하고 질책했다. 심지어 A씨가 햄버거를 제조하는 뒷모습을 촬영한 CCTV 화면을 휴대전화에 저장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도 했다. 원래 담당업무가 아닌데도 냉장고 성에제거나 재고조사, 고객불만 리뷰 관리 업무도 지시했다. 사실상 고백 거절에 대한 보복이었다. 참다 못한 A씨는 회사 고충처리위원회에 이 사실을 알렸고, 회사는 진상조사를 거친 뒤 인사위원회 징계심의를 거쳐 B씨를 직장내 괴롭힘과 근무태만, 성희롱 등 사유로 해고했다.
B씨는 이에 불복해 2019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한차례 호감을 표시했다가 거절당한 건 사실이지만, 그 이후로는 개인적인 감정을 표시한 적이 없고 수시로 연락을 한 것은 업무상 필요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를 질책한 것 역시 업무실적 부진에 따른 것으로, 사적인 감정이 담긴 게 아니라고 했다. CCTV 영상 역시 햄버거 제조 과정에서 이물질이 발견됐다는 민원 대응 차원에서 확보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B씨는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며 3년 동안 재판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법원 역시 최근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사측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세종은 A씨와 B씨 사이의 통화기록을 확보해 징계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이병한 변호사와 2003년부터 세종에 몸담은 노동분야 전문가인 박성기 변호사, 고용노동부 서기관 출신의 김동욱 변호사 등이 사건을 맡았다. 세종은 B씨의 연락 횟수나 정도가 유사 직급의 다른 직원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잦고, 내용도 부적절했다는 점을 주장했다.
실제 B씨는 2019년 7월~9월 2개월 동안 수시로 연락을 했고, 근무시간 외에 연락한 횟수도 52회에 달했다. 총 통화시간은 3시간 25분이나 됐다. 재판 과정에서 B씨가 술을 마시고 매장 전화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연락하곤 28분씩이나 고백 거절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한 사실도 확인됐다. B씨는 이례적으로 피해자와 근무시간이 겹쳐 퇴근시간이 같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 역시 B씨가 근무시간을 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종은 B씨가 피해자의 햄버거 제조 과정을 담은 CCTV 영상을 휴대전화에 보관하고 있다가 단체 카카오톡 방에 공유한 것도 공포심과 불안감을 유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해고조치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다만 B씨의 행위가 성적인 언동을 하지는 않아 징계사유 중 ‘성희롱’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직장 내 성희롱은 인정되지 않으나 B씨의 행위 자체가 이미 직장 내 괴롭힘이나 업무태만에 해당한다”며 “징계해고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B씨가 피해자를 상대로 한 부당한 처우와 업무지시의 동기, 행위 형태와 정도, 횟수와 반복성, 이로 인해 초래됐을 것으로 보이는 근로자들의 사기저하 등을 참작해 보면, B씨의 행위는 비난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 근로자 비중이 높은 회사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동종 행위의 반복 가능성과 그에 따른 추가 피해의 발생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B씨는 해고가 무효임을 전제로 회사를 상대로 밀린 임금 450여만원도 지급하라고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좌영길 기자
jyg97@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