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나 작가의 첫 소설집 ‘청귤’ 이후 4년 만의 소설집이다. 고통과 상처, 치유라는 삶의 영원한 패턴을 이번 소설집에서도 다양한 화자들을 통해 보여준다.
인물들은 불안하고 주저한다. 상대의 무심한 혹은 의도된 행동의 신호를 읽지 못해 불안하고 그런 마음의 향배를 알지 못해 불안하다. 그래서 망설이며 반 발 내딛였다가 내민 발을 도로 들인다. 반 발 더 내딛였다간 영원히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질 것 같기 때문이다.제 자리만이 상처받지 않고 가장 안전하다.
그렇게 인물들은 내면으로 침잠한다. 이는 단편 ‘오지 않은 미래’에서 탁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비유된다. 발효할 때 기포가 올라오며 ‘술이 끓는’ 과정을 거쳐 윗부분에는 맑은 술이 아래에는 무겁게 가라앉는 침전물이 생기는 탁주, 더 이상 효모균이 증식하지 못하도록 열처리를 하거나 산패가 진행되면 버릴 수 밖에 없는 탁주는 마음의 화학작용과 유사하다.
단편 ‘레드벨벳’의 주인공 ‘나’는 영어 강사 헤럴드와 우연히 찻집에서 대화를 나누며 그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에게 아내가 있다는 이유로 단번에 거절 당한다. 자신의 연락을 시종일관 무시하면서도 직접 작성한 영어 교재와 영시 필사본을 선물하는 그의 처신에 의문과 불편을 느끼지만 의구심을 해소할 방법은 없다.
책 제목 ‘깊은숨’은 단편 ‘가만히 바라보면’에 나온다. 내면의 평화를 얻기 위한 요가의 호흡법을 의미한다. 또한 고뇌에 차서 내뱉는 한숨, 편안하게 휴식하며 내뱉는 숨, 살아있음을 일깨우는 들숨과 날숨 등 다층적이다. 바깥의 흔들리는 모습들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의 몸과 내면을 응시하며 내적 힘을 키우고 내 방식대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자기 선언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깊은숨/김혜나 지음/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