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안주, 음주문화 2천년의 역사 조명

한중일 고문헌 번역…기원·진화 밝혀

술마심의 의미는 겸손한 맑은 영혼 추구

한반도 술 제조, 쌀과 함께 中서 유래

음양사상·유교적 음주문화 현재로 전수

[북적book적]“벌칙주 마셔라, 노래해!”…신라인 술자리도 그랬다
김홍도의 ‘군선도’ (리움미술관 소장). 술은 신선들이 즐기는 음식이었다.

‘술을 다 마신 다음 크게 웃기’‘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소리 없이 춤을 추기’…

연희장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신라왕실에서 사용한 주령구에 적혀 있는 지시 내용이다. 14면체인 주령구는 참나무로 만든 지름 6cm의 주사위와 같은 놀이기구로, 동궁의 처소인 동궁월지에서 발굴됐다, 주령구에는 굴린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지시 글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노래를 부르게 하고, 강제로 술을 마시게 하고, 춤추게 하는 일종의 벌칙이다. 요즘과 다르지 않은 우리 술문화의 뿌리다.

[북적book적]“벌칙주 마셔라, 노래해!”…신라인 술자리도 그랬다

김상보 대전보건대 교수가 쓴 ‘전통주 인문학’(헬스레터)은 고대부터 조선 왕실의 음복연까지 2000년 간 한반도 술 문화를 인문학적·문명사적으로 집대성한 역작이다. 전통주 연구는 술과 음식, 음주 문화와 관련한 중국과 한국, 일본의 고문헌 원전을 해석하고 음식의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작업으로, 이 책은 이런 요소를 충족한 본격 대중교양 인문학서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저자는 술과 술안주, 음주문화를 2000~2500년의 오랜 시간의 연속성 안에 배치, 기원과 변화 과정을 살핀다.

우리 술 문화의 뿌리인 음주 기록은 고대 중국 문헌에서 발견된다. 부여국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이 있고, 마한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군집가무 후 가무음주를 즐겼다는 기록이 ‘후한서’에 나온다.

또한 하늘에 제사 지낸 다음, 모여서 음주가무를 즐기는데, 조나 궤를 사용하여 음식을 차리고, 식기는 변, 두, 보, 궤를 사용하고 술은 작에 따라 마셨다고 2000~2500년 전 경 ‘예기’는 전한다.

음식을 차리고 제사 후엔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즐겼다는 음복연은 이후 조선시대 가례연, 진연, 진찬연, 영접연 등 연향 문화로 발전한다.

조선왕실은 고려왕실에서 행했던 국가적 행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가령 고려왕실의 생일잔치 연향인 풍정연은 이후 내연과 진연, 진연과 진찬으로 바뀌지만 연향에서의 가치체계는 일관되게 이어졌다.

저자에 따르면, 전통 연향에서 보이는 술과 악(樂), 안주와 의례 등은 모두 음양사상에 바탕하고 있다. 술과 악은 양에 속하고 안주와 의례는 음에 속한다. 술과 악은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중요한 요소이며, 둘이 결합해야 비로소 주도가 완성된다. 술과 술안주를 대할 때에는 만드는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고 술을 통해 깨달아 겸손한 맑은 영혼을 갖도록 하는 데 술마심의 의미가 있다.

조선왕조의 숭유정책은 주(周)나라에로의 복고주의로, 주나라 주공의 작품이라고 보여지는 ‘주례’, ‘의례’를 ‘경국대전’과 ‘국조조례의’의 기반으로 삼았다.

저자는 왕조의 오례(五禮)는 반드시 술과 술안주 예가 있는데, 모두 유교적 틀 속에서 진행됐다. 유학정신이 곧 주례, 주도를 탄생시키고 이들이 민중의 관혼상제, 손님접대 등에 전해져 우리의 정신문화 뿐 아니라 음주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특히 사대부들은 집집마다 술양주법이 생겼는데, 이를 가양주라 부른다.

저자는 우리의 음식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국 고조리서로 남북조시대 ‘제민요술’과 원나라시대 ‘거가필용’을 꼽는다.

고대 음주문화는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파된 산국인 흩임누룩부터 시작됐으며, 이후 530년 경 ‘제민요술’이 간행된 때를 전후로 병국인 떡누룩 시대가 도래한다. 이 시기는 요서를 백제 땅에 포함시켰던 가장 번성했던 백제시대와 맞물려 있다. 통일신라시대 역시 병국으로 법주를 만들어 먹었고, 조선시대에 등장하는 이화주도 병국을 써 만든 백제문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삼국유사’에는 통일신라 시대, 술문화를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문무왕의 배다른 동생 차득공이 자신을 대접했던 아전 안길을 위해 50미찬을 대접했다는 것인데, 다섯 상, 다섯 종류의 술을 대접했다는 것이다.

한중일 술 문화와 전래과정을 보여주는 술 도구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쌀로 만든 산국을 사용하는 양주기술은 한반도 쌀 유래지로 지목되는 양자강 하류 지역에서 함께 전래됐을 것으로 본다. 일본의 경우 고훈(4~6세기)시대부터 헤이안(794~1192)시대에 걸쳐 한반도로부터 전해진 ‘수혜기’가 유적에서 출토되는데, 작은 병 크기의 이 그릇은 배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이 구멍에 대나무로 만든 빨대를 꽂아 빨아 마시도록 한 도구다.

수혜기의 출현으로 당시 한반도인과 일본인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빨아 먹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술병에 넣은 술은 거르지 않은 술로 빨대로 빨아 먹거나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고려말에는 포도주, 소주 등 중국의 고대 조리서인 '거가필용'의 영향을 받아 각종 술이 한반도에 전해진다.

전통주와 누룩, 안주, 음주문화가 2000년간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한반도의 술 발전사를 집대성한 책은 저자가 4년 간의 집필 끝에 완성한 730쪽에 달하는 노작이다.

고문헌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술의 전래와 발달, 음식문화 등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연대기적으로 서술, 이해에 도움을 준다. 각종 양주법의 상세한 소개와 음식조리법, 술과 음주문화를 사상적으로 살핀 점도 흥미롭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전통주 인문학/김상보 지음/헬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