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투어리즘(screen tourism)’.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하면 촬영지에 관광객이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이란 장점이 있는가 하면, 과도한 관광객으로 현지 주민과의 마찰이 빚어지는 ‘오버 투어리즘(over tourism)’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촬영지가 도심이라면 그나마 낫다. 수려한 자연풍경이 대상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자연훼손이다. 현지인은 관광객을 향해 하소연이라도 하지만 자연은 그저 묵묵히 파괴될 뿐이다.
최근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팽나무가 논란에 섰다. ‘우영우 광풍’ 여파로 일순간 수많은 관광객이 팽나무를 찾아나서면서다. 관광객은 물론 유튜버까지 대거 뛰어들었다. 유튜브엔 ‘우영우 팽나무 실시간 라이브 중계’ 등의 방송까지 나왔다. 갖가지 이색 콘셉트를 잡고 팽나무를 방문, 촬영한 영상도 다수다.
평범한 농촌마을에 관광객이 순식간에 몰려들면서 주차 문제에 쓰레기투기 등이 문제로 불거졌다. 더 큰 논란은 팽나무 손상 여부다. 잎이 마르며 누렇게 변하고 관광객 증가로 뿌리가 손상됐다는 문제 제기가 일었다. 일단 관계기관은 조사결과, 관광객과 무관한 현상이라고 밝혔다. 다만 훼손 가능성에 대비해 사전 예방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팽나무는 주로 중남부지방에 사는 장수목으로, 마을의 대표적인 당산나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우영우 팽나무’는 수령이 500년 정도된 보호수다. 높이 16m에 가슴둘레 6.8m, 수관폭(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최대 폭)이 27m 정도로, 팽나무 중에서도 비교적 크고 오래된 나무에 속한다.
‘우영우 팽나무’는 훼손 전 대책 마련에 들어간 사례지만 시기를 놓쳐 훼손을 막지 못한 사례도 상당수다. 강원 삼척의 이끼폭포는 영화 ‘옥자’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이끼 사이로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비경이 일품이다. 문제는 관광객이 늘면서 출입금지지역까지 들어가 사진촬영 등을 시도한 관광객이 늘면서였다. 비경을 만들어냈던 이끼가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후 탐방로 조성공사 및 출입통제 등의 기간을 거쳐 재개방됐다.
용눈이오름이나 금오름 등 제주도의 유명한 오름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용눈이오름은 자연휴식년제에 따라 오는 2023년까지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관광객이 늘면서 탐방로를 중심으로 식물이 훼손됐다. 그 외에도 제주도 내 유명한 오름마다 탐방객 증가로 몸살을 겪고 있다.
영화 ‘더 비치’ 촬영지인 태국의 마야베이는 그야말로 자연이 만든 걸작품이다. 산호 생태계가 풍부하고 다양한 열대어의 보고다. 영화에 등장한 이후 전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으로 가득 찼다.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이곳은 피폐해졌다. 산호 생태계가 파괴됐고 쓰레기가 해변에 쌓였다. 결국 2018년 폐쇄 조치됐다. 이후 3년간에 걸쳐 생태계 복원작업을 진행한 끝에 재개방했다.
해변이 쓰레기장처럼 훼손됐던 필리핀의 보라카이도 6개월간 전면 폐쇄하고 정화작업을 거쳐 재개방한 바 있다.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경고하는 기후위기시계는 코로나 사태 이후 ‘7년’ 이상으로 늘었으나 최근 인류가 다시 활동을 재개하자 이내 ‘6년’으로 회귀했다. 인류가 활동을 멈추면 지구엔 휴식이, 인류가 움직이면 다시 지구는 뜨거워진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경고한 사례다.
훼손된 자연을 복구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과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 간단히 말해 관광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자연환경을 지켜내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흔적을 남기지 말며 출입이 허용된 탐방로만 방문하는 등 최대한 기본을 지키려는 자세라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