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입생 때였던 1997년에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 최루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한양대 캠퍼스에서 출범식을 강행했다. 그런데 이 행사 참가자 몇몇이 사람을 폭행하고 사망하게 한 사실이 알려지며 큰 논란이 일었다. ‘이석 폭행치사 사건’이다.

한총련 간부 몇몇이 당시 한양대 인근을 배회하던 이석을 ‘경찰이 심은 프락치’로 지목하고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15시간 동안 고문과 폭행을 이어갔다. 결국 이석은 사망했다. 단순히 폭행만 한 게 아니라 코에 최루액을 넣는 등 옛 군부가 자행하던 고문을 그대로 답습했다. 현장에 있던 한총련 간부는 말리기는커녕 ‘전시 상황에는 인권을 따질 필요가 없다’며 더 부추겼다. 1996년 연세대 사태에 이어 97년 이석 치사 사건이 발생하며 한총련은 급속히 지지 기반을 상실했다. 기자가 다니던 학교에도 이 내용을 놓고 대자보가 붙었다. 누군가가 사망한 이석을 프락치로 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상세히 적었다. 얼마나 많은 학생이 ‘프락치론’에 수긍했을지 모르겠지만 곧 그 대자보 위에는 진한 매직으로 글이 덧씌워졌다. ‘프락치면 죽여도 되냐, 이 *새끼들아’. 전남 해남 출신의 선반공이었던 이석은 수원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다 마침 일을 그만두고 서울을 돌아다니다 변을 당했다고 한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고발됐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희생자가 ‘월북자’라는 판단이 내려지는 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사살됐고, 시신이 불탔다는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월북자’ 낙인이 찍히면서 사회적인 반향이 반감됐다. 만약 여기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면 단순히 정치적 보복 수사로 여길 사안이 아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우리 국민이 반국가단체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도 정치적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국정원이 나서 민심을 돌렸다는 의미가 된다.

월북자는 죽어도 상관이 없는가.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석 사건에서 프락치냐, 아니냐가 논란이 그랬듯이 실제 사망한 공무원이 월북을 시도했는지는 본질적이지 않다. 그런데 마치 희생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취급됐다. 만약 국정원이 별다른 물증도 없이 박지원 전 원장을 고발했다면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 문제를 키워 형사사건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반대로 박지원 전 원장 때 국정원이 우리 국민의 피살 사건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월북자’ 프레임을 기획했거나 이를 위해 자료를 은폐 또는 왜곡했다면 국가로서 하지 말아야 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월북자냐, 아니냐는 사안의 핵심이 아니었고 이러한 프레임은 정당한 게 아니었다. 이러한 지적을 ‘공안몰이’로 볼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망한 사람이 월북자라고, 마치 희생자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게 그동안 안보팔이에 집중했던 구태 색깔론 정치 아닐까.

1997년 민간인을 사망하게 했던 대학생 중 몇몇은 검찰 수사를 받았고, 재판을 거쳐 실형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2년 만에 사면됐다. 그중 일부는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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