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단지 사이에서 ‘재건축’ 목소리
규제 완화 기대감에 재건축 모임도 결성
잡음 이어지며 매매 시장은 발길도 끊겨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얼마 전 단지 앞에 리모델링 사업을 취소하고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현수막이 걸렸어요. 나중에 보니 친한 단지 내 주민들 중 상당수가 재건축 모임에 이미 가입했더라구요. 그 전에도 다른 의견이 나오긴 했지만, 최근에는 단지 자체가 반으로 갈라져 싸우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최근 리모델링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경기 안양시 초원6단지 주민인 A 씨는 요즘 이웃을 만나더라도 재건축이나 리모델링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말을 돌리기 바쁘다고 말했다. 잘못 얘기했다가 웃으며 인사하던 이웃 사이에 싸움이 붙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리모델링을 하자는 사람은 이제 시공사까지 정하는 마당에 무슨 재건축이냐는 반응이고, 재건축을 원하는 사람들은 리모델링을 하면 다른 단지에 뒤쳐질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라며 “단지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만 한 것 같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특별법 제정까지 언급되며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진 1기 신도시 주민들이 리모델링과 재건축 사이에서 고통받는 모양새다. 이제 정비사업에 나선 단지뿐만 아니라 이미 리모델링 사업이 추진된 단지까지 최근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같은 단지 주민 사이에서 다툼이 발생하는 등 소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표적 1기 신도시인 경기 안양 평촌의 경우, 일찌감치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된 단지 사이에서 갈등이 큰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18일 리모델링 시공사 선정 입찰을 위한 현장설명회를 진행한 조합 측은 “시공사 선정 절차에 들어서는 등 리모델링 사업이 이미 상당히 추진된 상황”이라며 “이미 용적률이 200%가 넘는 단지로, 재건축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데 주민들이 대부분 동의하기도 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재건축을 원하는 주민 모임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한 상황에서 리모델링만 고집해서는 다른 단지에 뒤쳐질 수밖에 없다”라며 “사업 수익성 역시 용적률 규제 완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반박했다.
사정은 다른 단지도 비슷하다. 평촌의 한 공인 대표는 “한양아파트는 최근에 재건축을 요구하는 주민 목소리가 커졌다”라며 “바로 옆 세경아파트 역시 리모델링 조합이 이미 한창인 상황에서 최근 재건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일부가 매물을 내놓는 등 단지가 시끄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예 본격적인 재건축 사업을 시작한 단지도 있다. 목련단지의 경우, 최근 통합재건축준비위를 출범시키며 본격적인 재건축 사업에 나섰다.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이에서 시끄러운 단지 내부와 달리 매매시장은 비교적 조용한 모습이다. 이미 리모델링 사업을 오래 전부터 추진하며 주요 단지마다 매매 시세가 크게 올랐는데, 최근 잡음이 커지며 매물은 줄고 거래는 끊겼다는 것이다.
평촌의 B 공인 대표는 “리모델링 추진 단지 중 한 곳인 세경아파트는 지난해 전용 49㎡가 7억2000만원에 거래됐는데, 그 이후 매수자들의 문의를 하면서도 비싸다며 실제 구매는 주저하고 있다”라며 “일부 집주인이 가격을 낮춰 6억8000만원대 매물도 있지만, 최근에도 매수를 문의하러 온 사람이 ‘비싸다’는 반응을 보이며 발길을 되돌렸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