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친환경 실천가들 사이에서 ‘폐어망’은 ‘바다의 주적’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 덕분이다. 한사코 거부해온 플라스틱 빨대는 실제 바다에 흘러들어 가는 쓰레기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진짜 문제는 어업에서 발생하는 ‘폐어망’이라고 다큐는 지적한다.
하지만 폐어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해변에 나가 폐어망을 줍는 방법이 있지만, 대부분은 바다 위에 버려져 가라앉다 보니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내의 한 스타트업이 폐어망 문제의 솔루션을 내놔 주목받고 있다. 폐어망을 수거해 재활용 나일론을 생산하고 있는 소셜벤처 ‘넷스파’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20년 설립된 넷스파는 1년여 만에 3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대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는 등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넷스파를 설립한 정택수 대표는 “수년 내에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폐어망의 절반 이상을 재활용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정 대표를 만나 그 밑그림을 엿봤다.
-먼저 넷스파의 사업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저희는 해양폐기물 중 폐어망을 처리해서 PCR(Post-Consumer Recycled) 원료를 생산하는 기업입니다. PCR이란 소비자가 사용한 후 버린 물건을 재활용해서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요. 폐어망은 대부분 나일론 소재로 만들어져 있고, 그래서 저희도 나일론 소재를 재활용해내고 있습니다.”
-폐어망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있는지?
“창업하기 이전에 의류 브랜드를 운영했었어요. 멸종 위기에 처한 거북 ‘리들리(각시 바다거북)’ 이름을 딴 브랜드였는데, 친환경 소재로 옷을 만들었죠. 그러다 여름 아이템을 기획할 때였는데, 나일론으로 옷을 만들려고 보니 PCR 나일론을 구할 데가 없는 거예요.
찾아보니 폐어망을 통해 나일론을 재활용할 수 있더라고요. 노르웨이의 농어업 폐기물 운반 업체와 이탈리아의 섬유업체가 참여하는 유럽연합(EU) 차원의 프로젝트가 이미 10년 전부터 가동되고 있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까진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생산량이 극히 적어서 저명한 브랜드들만 협업이 가능한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우리라고 못 할 비즈니스는 아니잖아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있고, 어업도 활발한 나라인데 말이죠. 사실 효성티앤씨에서 이미 10년 전에 폐어망에서 재활용 나일론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했었는데, 원재료가 부족한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가 폐어망을 확보해서 기업들에게 제공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죠. 소비재를 만드는 것보다는 아예 우리가 원재료를 만들어 이 생태계를 확장시켜보자, 이게 넷스파의 시작이었습니다.”
넷스파가 설립된 것은 지난 2020년 10월로, 당시 정 대표의 나이는 서른이었다. 섬유시험분석원으로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과 함께 2명이서 사업을 시작했고,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직원이 12명으로 불어났다.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폐어망 규모를 조사해보셨을 듯한데요. 얼마나 심각한가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발표를 참고하면, 매년 한국에서 버려지는 폐어망이 4만3000t 수준입니다. 근데 이 데이터는 어망 교체 주기를 예측해서 산출한 단순 추정치예요. 생산량을 따져보려 해도, 폐어망은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에 포함되지 않아서 집계가 힘듭니다. 어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폐어망 대부분이 중국산이기도 하고요.
분명 엄청나게 버려지고 있을 텐데, 자원순환은 전혀 안 되고 있어요. 염분 때문에 대부분이 그냥 소각장이나 매립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어민들이 육지로 가지고 나와서 버리는 폐어망은 일부분이고, 대부분은 어업 활동 중에 그냥 잘라서 바다에 버리고 계세요. 어망은 물고기들이 잘 볼 수 없는 색으로 만들어지거든요. 바다 한가운데 침전된 수많은 폐어망에 생물들이 걸려 폐사하게 되죠.”
-폐어망을 재활용하는 넷스파의 기술을 소개한다면?
“사실 이전에도 폐어망을 위탁받아 수거·운반·처리하는 업체들은 많았어요. 폐어망에서 나일론을 따로 뽑아내기만 하면 돈이 될거란 걸 그들도 알았죠. 하지만 그 기술을 갖출 여력이 없고 경제성도 없어 보이니 그냥 매립장이나 소각장으로 보낸 거에요.
수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 저희들은 과감히 뛰어들었어요. 우선 나일론의 종류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예컨대 수요처에서 나일론 식스 소재만을 원한다고 해보죠. 기존 선별 장비는 나일론이다 아니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나일론 식스인지 아니면 나일론 더블식스인지까진 선별해내지 못했어요. 저희는 그 선별 역량을 갖췄습니다.
또 다른 기술력은 가공 기술입니다. 어망에서 나일론만 회수하려면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과의 물리적 결합을 끊어줘야 하는데요. 그냥 기존에 유통되던 파분쇄기에 넣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어망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보니 연속적인 공정이 힘들어요. 그래서 저희는 어망을 5㎜ 단위로 연속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별도의 파분쇄기를 개발했습니다.”
-폐어망에서 뽑아낸 나일론은 어디에 납품하고 있나요?
“효성티앤씨가 나일론 원사 생산을 위해 저희 원료를 파일럿 형태로 공급받고 있고요, 올해 하반기에는 양산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자동차나 전자기기 부품에 활용되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측면에서도 저희 원료가 쓰일 수 있어요. 이미 계약을 체결한 곳도 있고, 올해 상반기 내에 추가될 고객사도 두 곳 이상입니다.
효성티앤씨의 경우 양산에 들어가게 되면 월 100~150t 정도 생산하게 될 거고요. 이밖에 예비 고객사에 공급할 물량이 A사는 월 100t 정도, B사는 연간 2000T 정도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를 합치면, 연간 생산 능력은 4000t 수준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넷스파는 지난해 11월 벤처캐피탈 티비티(TBT), 마그나인베스트먼트, 임팩트스퀘어 등에서 3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올해 중 추가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확보된 자금은 국내외 공장 증설에 투입할 계획이다.
“사실 폐어망 처리 문제가 정말 심각한 건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지역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에도 공장을 지으려고 합니다. 현지 폐어망에서 재활용한 나일론을 국내로 들여오거나, 혹은 현지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과 함께 판로를 개척할 수도 있겠죠.”
-해양 폐기물을 재활용하겠다는 기업이 넷스파 뿐만은 아닌 듯합니다. 차별점이 있다면?
“소재의 순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요. 소재의 순도를 얼마나 더 높일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 소재의 용처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분야에 진출한 것이 특히 의미가 있는데요. 자동차나 전자기기 부품으로 활용되려면, 기본적으로 재료의 물성치가 만족스러워야 해요. 염분이나 이물, 무기물을 제거하는 것은 당연하고, 동시에 다른 플라스틱 소재가 섞이지 않고 얼마나 순수하게 나일론만으로 구성돼 있는가도 중요하죠. 저희 제품은 순도가 95% 이상입니다.”
-사실 버려지는 양을 생각하면, 재활용되는 양은 턱없이 적지 않을까 하는 비관적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 폐기물을 줄이는 데 넷스파는 얼마나 기여할 수 있나요?
“소각장이나 매립장으로 향하고 있는 폐어망의 규모와 저희가 재활용할 수 있는 폐어망의 규모를 비교한 ‘자원화 비율’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국내에서 버려지는 폐어망 규모가 4만t 수준이고, 저희의 생산 능력이 연간 4000t 정도니까 자원화율은 약 10%입니다. 향후 저희의 생산 능력을 2만t까지 끌어올리려고 하는데요, 자원화율로 말하자면 국내에서 버려지는 어망의 50% 이상을 재활용하겠다는 목표입니다.
탄소 배출 절감 측면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EU에서 폐어망 재활용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1㎏의 재화용 나일론을 생산하면 새 나일론을 만들 때와 비교해 3.68㎏의 탄소 절감 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재활용은 폐기물 문제의 근원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수많은 전문가와 환경 운동가들은 지적한다. 애초에 더 적게 소비하고 적게 버리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에게, ‘어망을 조금만 사용하고, 더 오래 사용하라’는 메시지는 공감을 일으키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정 대표는 “어망을 쓰긴 쓰되, 잘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한다.
“폐어망이 뭐가 문제인지 인지하고 있는 어민들이 아직은 많지 않아요. ‘안 그래도 바쁜데 언제 건져 올려 육지까지 갖고 나오냐, 그냥 끊어버리고 말지’ 하고요. 그래도 계속 얘기해야죠. 최소한 바다에는 버리지 말아 달라고, 육지로 갖고 나오기만 해달라고요. 그렇게 갖고 나온 어망이 어딘가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리면, 어민 분들도 자연스럽게 변하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정 대표와 넷스파는 어민들의 인식 개선 과정에도 직접 나서볼 계획이다.
“해양 보호를 위한 여러 캠페인이 있잖아요. 모래사장에 가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해양 폐기물 분야에서 정말 개선이 필요한 건 모래사장이 아니라 어항(어선 항구)이거든요. 대부분의 어항이 악취가 나고 더럽고 지저분해요. 저희 회사차원에서든 관련 기업이나 유관기업과 협업해서든, 어항 정비 캠페인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