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요즘은 3년이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급변하는 산업생태계를 이렇게 언급했다. 업종을 불문하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 하나의 산업에서 성공하더라도 경쟁 우위의 지속력이 오래가지 않는다. 빠른 추격자들의 등장 외에도 아예 ‘업(業)의 판’이 바뀌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자동차 시대에 아무리 좋은 마차는 의미가 없다. 기업이 한 우물만 파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 여러 우물을 동시에 파야 한다. 우물이 아니라 아예 물을 구하는 다른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살아남는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피쳐폰 시대를 마감시켰다. 이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의 종말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문제는 이같은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예측하고, 이에 맞춰 대응할 것이냐는 것이다. 알고 실행하고 성공해야 한다. 이 삼박자가 딱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과도 직결된다. 기업의 번영은 국민과 국가의 먹거리와도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국내 기업은 글로벌 경쟁 기업에 비해 노력을 더 배가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한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내수시장은 좁다.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한다. 과거 우리나라가 속했던 개발도상국에 대한 배려(?)는 사라졌다. 오히려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친소관계를 따져 혜택과 불이익을 준다. 미중 갈등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대외변수에 취약하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이 감기가 든다. 요즘은 이런 기침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환율, 금리, 유가는 국제정세에 따라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친다. 이런 와중에 선진국은 자국산업보호로 돌아섰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를 앞세워 전쟁에 나서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 대표적인 국내 경제전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각자도생이다. 기업을 뛰지 못하게 하는 각종 모래주머니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과잉입법이 대표적이다. 2020년 5월 시작한 21대 국회들어 산자위, 환노위에서 의원입법을 통해 발의된 기업규제만 600개가 넘는다. 특히 기업과 연관이 많은 산자위의 경우 벌써 20대 국회 기업규제의 70%에 이른다. 그나마 새정부가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이 뛸 수 있도록 모래주머니를 벗겨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빛의 속도로 빠른 변화에 맞추지 않으면 ‘각주구검’(刻舟求劍)이다.
5월 8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최근 기업인 특별사면 이야기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산업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가 반도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매주 재판에 나서다보니 제대로된 경영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주된 사면복권 청원 이유다. 이 부회장을 비롯해 현 정부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하에 힘들었던 기업인이 많다. 떠나는 대통령도 이들에 대해 조금 더 관용의 모습을 보이는 게 재계는 물론 국민통합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경제는 타이밍이다.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리면 따라 잡기가 쉽지 않다. 각 산업에서 중국 등 추격자와의 거리는 좁혀졌고, 미국 등 선진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는 느낌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업과 기업인이 더 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권남근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