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 마스크 & 퍼핏 팀장
200여개의 퍼핏과 마스크로 빚은 예술
25년 전 ‘혁신적 설계’ 현재도 사용
죽마에 올라탄 배우, ‘기린 워킹’ 연마
사과 한 개ㆍ바나나 한 개 무게의 마스크
“퍼핏과 마스크가 말을 건네는 느낌 받을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배우의 두 발이 ‘계단식’으로 만든 죽마 위로 올라섰다. 다리 길이만 2m, 육상 동물 중 가장 키가 큰 기린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기 위해서다.
“처음 배우가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기린이 첫 발자국을 떼는 모습과 비슷해요.”
뮤지컬 ‘라이온 킹’의 배우들은 연습 첫날, 사바나 왕국에 사는 동물들을 형상화한 마스크와 퍼핏(꼭두각시 인형)의 작동법을 배운다. 드넓은 초원을 우아하게 거니는 기린의 움직임은 여느 퍼핏과는 다르다. “연습실에선 ‘기린 워킹’이라고 불렀어요. 배우들은 수없이 돌아다니고 걷는 연습을 해요. 배우에겐 중력이 바뀌기 때문에, 힘을 어디에 실어야 하는지를 익히는 과정이 필요해요.”
팀 루카스(Tim Lucas)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 마스크 & 퍼핏 팀장(Deputy Head of Masks and Puppets)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무대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동물 모양의 마스크나 퍼핏이 등장하는 뮤지컬이라고, 인형극이나 놀이공원의 퍼레이드를 짐작했다면 오산이다. 1997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21개국, 100여개 도시에서 무대에 오른 뮤지컬 ‘라이온 킹’(3월 18일까지, 예술의전당)은 25년 전의 기술과 상상으로 현재 공연예술의 최정점을 보여준다.
이 무대의 진짜 주인공은 사바나를 터전으로 삼은 “200여개의 퍼핏과 동물 가면”이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무대로 옮긴 연출가 줄리 테이머의 아이디어다. 지금 ‘라이온 킹’의 무대에서 만나는 모든 마스크와 퍼핏은 25년 전 초연 당시 완성된 ‘혁신적 설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팀 루카스 팀장은 “퍼핏은 제작에만 총 1만 7000여 시간이 소요되고, 마스크는 개당 원재료에서 완성까지 2~3일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각각의 마스크와 퍼핏은 사람이 쓰거나 신체에 연결해 작동해야 하는 만큼 ‘인체친화적’으로 제작됐다. 제작사에 따르면 초연 당시 모든 마스크와 퍼핏을 배우들이 직접 착용하며 무게, 움직임 등 테스트 과정을 거쳤다.
마스크나 퍼핏은 꽤 무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무게도 천차만별이다. ‘사바나의 왕’ 무파사 마스크는 사과 한 개, 암사자 날라의 가면은 바나나 한 개 무게밖에 되지 않는다. 소재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사자를 비롯한 동물들의 가면은 점토로 조각한 뒤 본을 뜨고, 우레탄과 항공기에 쓰이는 탄소섬유를 사용해 모형을 만든다.
팀 루카스 팀장은 “모든 마스크와 퍼핏을 제작할 때 자연적인 소재를 이용하려고 노력했다”며 “마스크에는 뼈가 부러졌을 때 사용하는 의료용 소재인 열가소성 플라스틱(Thermoplastic)도 주요 소재로 사용하고, 털 역시 자연적인 동물의 털로 제작됐다”고 말했다.
“모든 마스크와 퍼핏은 제작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제작 과정에도 상당 부분 어려움이 있어요.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퍼핏은 자주(코뿔새)예요. 자주는 몸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퍼핏 형태라서 눈, 부리, 깃털 등 모든 요소가 섬세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더 긴 시간이 필요해요.”
각 배우들에 맞게 ‘1인 맞춤형’으로 제작된 마스크는 오직 한 개만 존재한다. 정교한 요소들이 많고, 때가 잘 타는 자주 퍼핏만 하나를 더 만든다. 공연 내내 하나의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만큼 보관과 관리도 중요하다. 루카스 팀장은 “매일 공연 시작 전 수작업으로 일일 점검 시간을 갖고, 공연 전 모든 마스크와 퍼핏이 공연을 할 수 있는 수준인지 확인한다”고 말했다.
“페인트 터치업(채색) 등 수리와 세부작업을 진행하고 공연이 끝나면 마스크와 퍼핏을 닦으며 손상된 부위가 있는지 확인해요. 매 공연마다 새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어요.” 비바람에 노출되지 않는 ‘깨끗한 공간’에 보관하는 것도 필수다.
‘라이온 킹’ 마스크와 퍼핏의 중요한 특징은 배우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무대 뒤에 숨어 동물을 조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과 동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더블 이벤트’ 연출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강조한다. 배우의 얼굴과 마스크, 인체와 어우러진 퍼핏이 이질감 없이 보이기 위해선 배우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연습 첫날부터 마스크와 퍼핏 작동법을 익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무파사와 그의 동생인 스카의 마스크는 손에 있는 컨트롤러로 마스크를 움직여 조정한다. “처음엔 유선으로 마스크를 움직이도록 했으나, 최근 스카 마스크는 무선 손가락 컨트롤러로 업그레이드”됐다.
루카스 팀장은 “마스크는 다양한 움직임으로 배우의 연기를 향상시켜 많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한다”며 “퍼핏과 마스크는 작은 제스처에도 무대 위에선 움직임이 커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 퍼핏과 마스크의 움직임을 잘 다루도록 오랜 시간 거울을 보며 연습한다”고 말했다.
‘라이온 킹’ 속 마스크와 퍼핏의 디자인은 그것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었다. 루카스 팀장은 “배우가 공연 중에 마스크와 퍼핏을 사용하며 완벽하게 구현하지만, 마스크와 퍼핏만 두어도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눈썹을 치켜 세우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거만한 표정을 하고, 상처 입은 듯한 눈빛을 보내거나 천진난만한 눈짓을 하는 것… 이 모든 작은 디자인 요소들은 마스크와 퍼핏이라는 독특한 페르소나를 더해주고 있어요. 저마다의 표정을 담은 디자인 특징들은 ‘라이온 킹’ 안에서 모든 캐릭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거예요. 기회가 된다면, 마스크와 퍼핏을 유심히 보세요. 이들이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