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여론 왜곡 우려…6일 동안 여론조사 공표 금지
영국 등 민주주의 정착국 대부분 금지기간 없어
‘국민, 여론에 휘둘릴 가능성’ 우려한 국가주의 잔재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이후 표심… 깜깜이 속 판단해야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지난 3일부터 대통령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됐다. 정확히는 3일부터는 여론조사를 실시는 할 수 있으나 공표는 할 수 없다. 조사한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것은 지난 2일 이전까지 실시한 조사에 한해서다. 소위 깜깜이 선거 기간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이번 대선의 경우 여론조사 공표 금지(3일) 직전 ‘야권 후보 단일화’가 발표되면서, 여론 동향 추이가 크게 출렁일 개연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민 알권리 차원에서라도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왜 현행법은 이처럼 선거에 임박한 시점 여론조사 발표를 못하게 규정 하고 있을까. 우선 근거법을 살펴보면 현행 공직선거법 108조(여론조사의 결과공표금지 등) 1항은 ‘선거일 전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 시각까지 선거에 관해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경위와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256조(각종제한규정위반죄)는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데, 위 규정을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한 법이 마련돼 있는 이유에 대해선 헌법재판소가 지난 1999년 ‘합헌’ 판단을 내리면서 내놓은 설명이 주로 인용된다. 당시 헌재는 “밴드왜곤 효과, 열세자 효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쳐 국민 진의를 왜곡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여론조사 금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시 공식 블로그에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을 위해서다. 공정한 여론형성 또한 공정한 선거를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여론 조사가 표심을 왜곡할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면 왜 그 기간이 6일이어야 할까. 사실 공표 금지 기간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조금씩 줄어왔다. 선거법에 ‘여론조사 공표금지’ 항목이 추가된 것은 1958년이다. 당시엔 여론조사 자체가 금지됐었다. 그러나 1992년 처음으로 여론조사가 법적으로 허용이 됐고 대신 당시엔 공표금지 기간이 28일이나 됐다. 이것이 줄어 1994년에는 ‘22일’로 줄었고, 지금처럼 ‘6일’로 공표 금지 기간이 정해진 것은 2005년부터다.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한 것에 대해 ‘공정성을 위해’라고 밝힌 중앙선관위 역시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이틀로 줄여야 한다는 법 개정 안을 지난 2016년 6월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국회는 추가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달아 논의하다, 결국 자동 폐기됐다.
해외의 사례는 어떨까. 지난 2017년 세계여론조사협회(WAPOR)가 전세계 133개국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조사한 결과, 민주주의가 정착된 대부분의 국가에선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호주, 뉴질랜드 등이다. 스페인과 이스라엘은 공표 금지 기간이 5일이었고, 프랑스는 2일, 노르웨이와 캐나다는 각각 하루씩을 공표 금지 기간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국회에서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을 줄이는 방안이 논의된 바 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깜깜이 기간을 이틀로 줄이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유야무야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