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예술문화·전통·맛까지 품은 영월

요선암, 맑은개울 바위 군락 사이 ‘쉼표’

불멍의 낭만과 독서의 여유 ‘에코빌리지’

MZ세대 환호 예술놀터 ‘붉은달와이파크’

폐교한 구르뫼체험학습장, 별마로천문대

단종 유배지 청령포·관풍헌·김삿갓까지

형형색색 메밀전병·올챙이 국수도 인기

신비한 지질현상, 선비들의 풍류, 우리것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의지를 품은 요선암은 MZ세대 힐링 놀이터가 됐다. 쉼표 모양으로 형성된 돌개바위구멍의 얼음 위에서 청년들이 놀고 있다.
신비한 지질현상, 선비들의 풍류, 우리것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의지를 품은 요선암은 MZ세대 힐링 놀이터가 됐다. 쉼표 모양으로 형성된 돌개바위구멍의 얼음 위에서 청년들이 놀고 있다.
선돌
선돌
선암마을
선암마을
붉은달와이파크 진입로 붉은대숲
붉은달와이파크 진입로 붉은대숲
청령포 솔숲
청령포 솔숲

‘쉼표 있는 삶’을 추구하는 요즘, 진짜 ‘쉼표’를 찾았다. 찐빵의 안흥을 지나 동쪽 영월군 무릉도원에 진입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무릉도원면 초입 구르뫼마을에서 멀지 않은 요선암에 이르면, 맑은 개울 매끈한 바위 군락 사이에 커다란 쉼표가 있다.

단종인문학, 예술문화, 전통, 맛, 동강, 서강 등 여행의 스펙트럼을 다 품은 영월 초입에, 쉼과 멍의 징표인 양, 커다란 쉼표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영월은 산골 소도시인데 박물관이 28개이고, 단종의 장릉, 청령포, 관풍헌부터 ‘조선의 자연인’김삿갓 생가 공원까지, MZ세대 예술놀터 붉은달와이파크에서 부터 형형색색 메밀전병의 서부시장까지, 오밀조밀 참 많은 것을 가졌다.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의 요선암은 백덕산(1350m)과 태기산(1261m)에서 흘러내린 물이 합쳐져 남한강 지류 주천강 상류를 이루는 지점에 있는, 매끈 큰바위 군락이다. 이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의 중심이 바로 쉼표 돌개구멍이다. 전문용어로 주전자 구멍, ‘포트홀(Pot-hole)’이다. 중생대 쥬라기의 화강암이 둥글게 움푹 파인 모양인데, 암석의 갈라진 틈이나 오목한 곳으로 모래와 자갈이 들어갔다가 거센 물살 때문에 초고속 억겁의 소용돌이를 한 끝에 패인 구멍이다. 그리고 돌개구멍은 끄트머리에 물 나갈 길을 살짝 만들어 놓는다.

‘쉼표’ 구멍 말고도 ‘느낌표’ 돌 웅덩이, 선녀탕도 보이는 이곳은 인생샷 촬영지로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쌀쌀한 날씨에도 젊은 가족, 연인, 청년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하다.

요선암 옆 절벽 꼭대기엔 요선정이 있다. 숙종 어제시를 청허루에 두었다가 낡아 해체될 때 일제 경찰이 훔쳐갔는데, 주민들이 비싼 돈을 치르고 가져와 봉안하기 위해 누각을 지은 것이다. 원래는 징효라는 신라 고승이 열반했을 때 영롱한 사리 1000개 가량이 나왔던 암자터였다. 정자 앞 절벽 꼭대기엔 복 주머니 같은 둥근 암석에 불상을 새긴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요선암과 같은 무릉도원면의 구봉산 아래 구르뫼마을 체험학습장도 곧 열릴 것이다. 구르뫼마을은 구름과 학(鶴)이 머무르는 마을 운학리의 순우리말이고, 체험학습 운학수련장은 운학초등학교가 있던 폐교터이다. 수련장내에선 꽃떡만들기, 움집만들기를 주변의 자연속에선 생태탐방, 탁족, 뽕 오디채집 등이 진행되며, 함종복 교장선생님 관사였던 휴게실에서 샤워하고 쉰다. 잔디밭 운동장에서 야영도 한다. 밤풍경은 ‘구르미 그린 달빛’이다. 과거 산촌 초당과 너와집이 간간이 보이던 마을은 이제 유럽풍 가옥들이 자연과 조화롭게 착상한 풍경으로 바뀌었다.

MZ세대의 핫플레이스 휴게미술관 붉은달 와이파크는 무릉도원과 가깝다. 3년전 술샘박물관이었다가 그 골격 그대로 둔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붉은 대나무 정문을 지나면 2만6000㎡ 대지위 11개 전시관, 설치미술, 체험공간에서 감흥을 얻으며 손재주도 부려보고 배도 채운다.

2022년형 쉼터는 친환경 에코 숙소다. 영월읍 동강생태정보센터 인근 자연 속에 파묻힌 에코빌리지는 미래형 친환경 거리두기관광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제로하우스라는 이름 답게 탄소제로로 자연을 살린다는 뿌듯함을 약간의 불편함과 바꾸었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고, 태양열로 객실을 덥힌다. 세탁한 침구류와 수건도 햇살 좋은 날 자연 건조하고, 다림질 역시 하지 않는다. 방엔 냉장고, 주방 시설이 없고 공용 1대씩만 공동시설구역에 있다. 약간 불편해도 자연이 좋아하니 나도 좋고, 자연은 선물로 별이 빛나는 밤과 산새 지저귀는 아침을 제공한다. 밖에선 불멍의 낭만이, 안에선 독서의 여유도 있다. 근처의 동강생태정보센터와 영월곤충박물관은 에코빌리지와 함께 에코 에듀테인먼트 꾸러미이다.

읍내 청령포, 관풍헌, 별마로천문대 등지로 가기 전 영월 답사객의 ‘참새 방앗간’한반도 지형을 둘러본다. 늦겨울 이곳은 개골(開骨) 산천이고 물도 줄어, 한반도 영토가 부쩍 넓어졌다. 강원도 지정 고생대지질공원이기도 한 이곳은 전국 한반도 지형 관광마케팅 1호이다. 영월의 파트너는 옥천의 동서 바뀐 한반도 지형이다. 둘을 붙여놓으면 데칼코마니이다.

서강과 동강으로 엮인 영월의 물줄기에서 서강 끝자락 절벽 옆에 단독으로 우뚝 솟은 선돌 역시 6억~3억년 전 고생대에 빚어진 것이다. 석회암 사이로 스며든 빗물 등으로 서서히 갈라져 나온, 제작 기간 수억년 걸린 작품이다.

동-서-북이 물로, 남쪽이 절벽에 막힌 청령포는 단종이 처음 유배된 곳이다. 수양(세조)이 사람을 보내 죽인 곳은 관풍헌이다. 사형집행자 왕방연은 영월의 물줄기를 내려다보면서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애달프다)’고 슬퍼했다.

배를 타고 청령포 안으로 들어가면 소박한 기와집으로 복원된 단종어소(端宗御所) 주변의 솔숲이 아름답다. 천연기념물 관음송이 왕 되어 거느리는 이곳은 아름다운숲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소도시에 천문대를 둘 생각들을 못하는데, 청정 대기의 영월군은 선제적으로 봉래산 정상에 천문대를 만들었다. 청령포와 멀지 않다. 천문대는 굴절, 반사 망원경을 통해 달과 별을 관찰할 수 있다.

하늘도 멋지지만, 전망 좋은 곳에 있다 보니, 굽이치는 동강, 강을 호위하는 겹겹의 산봉우리들, 그 사이로 내미는 아침햇발을 구경시키는 일도 영월 별마로 천문대의 임무가 되어버렸다.

날이 좋아지면 패러글라이딩도 뜬다. 영월 서부시장에서 배를 채우고 한옥으로 만들어진 영월역 쪽으로 가다보면 다리 위로 글라이더가 지나간다.

서부시장 전집의 인기가 대단하다. 배추전, 부침개, 메밀전병, 올챙이국수, 곤드레·감자 베이커리, 한반도빵 등이 총공세로 후각을 자극해 여행자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만들어버린다. 옥수수를 갈아 걸죽하게 겔(gel) 상태로 만든 뒤 채에 부어, 끓는 물 위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것을 삶으면, 머리는 굵고 꼬리부분은 길고 가는 올챙이 모양이 된다. 갖은 양념과 고명을 얹으면 바로 올챙이 국수다.

어라연, 고씨굴 등 자연유산, 화석박물관, 종교미술박물관, 김삿갓유적지 등 자연·인문 볼거리 많다. 물푸레나무 기둥, 통나무판, 소나무-참나무가지, 진흙으로 튼튼하게 놓았다가, 홍수철 만 되면 철거하는 분해조립형 섶다리에서는 영월 사람들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올해 주민중심의 관광두레가 문체부-한국관광공사의 지원 속에 처음 만들어진다. 발 닿는 곳마다 인문-생태 여행명소로 가득찬 영월의 보석 같은 ‘쉼표’들이 더 많은 국민과 공유될 것이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