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 소견 있어야 전문의 진료 가능
질좋은 치료 위해 비싼 사보험 활개
세금 안내는 근로자 전체 6.6% 불과
쓰레기통에서 빈병 찾는 노인 예사
세금·비용 부담에 자동차 엄두 못내
부 축적 기회 없어 도박중독도 많아
스웨덴은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병원비와 약값이 전액 무료다. 성인도 아무리 큰 수술을 받아도 병원비와 약값을 합쳐 연 45만원 이상은 낼 필요가 없다. 국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교육도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비가 전액 무료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생활비 명목으로 매주 10만7000원을 정부가 지원한다.
복지국가 스웨덴을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예로, 한국은 복지정책 설계시 종종 스웨덴 모델을 참고하곤 한다. 그런데 직장인 박지우씨가 현지에서 생활하고 연구해 쓴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추수밭)에 따르면, 복지국가 스웨덴의 모습은 좀 다르다.
우선 의료시스템의 경우, 본인부담 상한액에 치과는 빠져있다. 간단한 치과 상담에 6만5000원, 스케일링 한번에 18만원을 내야 한다.
더 의아한 건 내가 아프다고 병원에 갈 수 있거나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스웨덴의 병원은 사전예약제로 상담원은 환자의 증세가 병원을 갈 정도인지 판단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집에서 휴식을 권한다. 단순 경증으로는 병원 예약이 어렵다. 감기나 소화불량으로도 대학병원을 찾는 한국과는 판이하다. 예약에 성공해도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 일단 거주지역 보건소에서 일반의를 만난 뒤, 의사 소견이 있어야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응급조치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오랜 대기시간을 기다려 의사를 만났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치료를 받는 건 어렵다. 첨단 장비가 없거나 장비가 있어도 과잉진료 지적을 받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진료환경 때문에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 CT촬영이 자랑거리일 정도다. 한국의 종합검진 같은 개념도 없다. 아무리 큰 수술을 받아도 1~2일 내로 퇴원해야 한다.
그 결과, 빠르고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비싼 사보험에 가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오히려 의료양극화가 벌어지는 복지국가의 역설인 셈이다. 스웨덴에서 경상의료비 지출은 GDP대비 무려 11%에 달한다. 첨단 의료서비스를 마음대로 받을 수 있는 한국은 8%에 그친다. 스웨덴의 의료체계가 그만큼 비효율적이란 얘기다.
저자는 아프면 빈부에 관계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공공의료, 무상의료는 허울좋은 이상일 뿐이라며, 돈은 돈대로 많이 들고 의료서비스는 형편없는 ‘밑 빠진 독’이라고 지적한다.
교육은 어떤가. 한국 언론에 비친 스웨덴 학교는 천국처럼 비쳐진다. 청소년들은 입시나 사교육을 모르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그려지지만 공부를 많이 시키지 않는 학교 시스템에 학부모나 학생들은 불만이 많다.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스웨덴은 OECD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연간 수 천만 원에 달하는 학비를 지불하는 기숙학교나 국제학교를 택하는 상류층 부모들이 늘고 있으며, 학력 격차가 커지고 있다.
세금도 부자 증세가 당연할 듯 하지만 스웨덴은 중산층부터 최고세율 적용을 받는다. 연봉 6800만원 이상이 이에 해당하는데, 전일제 근로자 3명 중 1명 꼴이다. 최고세율은 52%이다. 한국으로 치면 연봉 5450만원을 버는 근로자가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셈이다. 통념과 달리 스웨덴의 고소득자들은 전체 세수에 그닥 기여하지 않는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27%를 부담하고 있다. 한국은 상위 10%가 70%이상을 납부한다. 저소득층도 형편에 맞게 세금을 낸다. 근로자 중 세금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은 6.6%에 불과하다. 우리는 40%가 면세자다.
스웨덴의 과세원칙은 서민증세로 소득이 대체로 평평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는 한국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는 근로자 10명 중 1명이 소득세 세수의 70%를 책임지는 동안 4명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과세당국이 파악조차 못한다.
세금의 비중과 소득의 비중을 비교, 이 비율이 1보다 크면 조세제도가 누진적으로 설계된 것인데, 스웨덴은 1.00, 노르웨이 0.95, 미국이 1.35, 한국이 1.6이다.
독점대기업을 묵인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스웨덴의 모습도 의외다. 저자는 스웨덴의 경제구조는 재벌 위주로 짜여 있다며, 2016년 스웨덴 주식시장 시가총액에서 스웨덴의 대표 재벌 발렌베리 가문 소유의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160년간 5대에 걸친 세습경영, 공익재단을 통한 세금 면제, 상속세 폐지로 온갖 책임에서 자유로운 발렌베리의 비결은 정경유착이는 것이다.
노인들은 연금으로 살 만할까? 가난이 없을 것 같은 스웨덴 노인들도 쓰레기통을 뒤지며 빈병을 줍는다.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절반 수준으로 수입 대비 41%나 되는 월세를 매달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갖 세금과 비용 때문에 자동차를 살 엄두조차 못내고 승진이 두려운 나라, 옆사람의 연봉과 신용정보를 속속들이 감시하고, 부의 기회가 없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부동산 투자나 도박에 빠져 가계부채가 치솟는 스웨덴의 모습은 평등이 활력을 저해시키고 불평등을 낳는 역설을 보여준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델로 여겨져온 스웨덴의 현실은 사회체제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진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박지우 지음/추수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