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게 되니 마음이 무겁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년 만의 미국 출장 귀국 후 첫 마디로 ‘냉혹한 현실’을 언급했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모바일, 가전, 신기술 등 각 분야에서의 위기감과 절박함이 고스란히 반영된 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4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기지 확충에 첫 발걸음을 뗐으나 역대 최대 규모(미국 내)인 만큼 투자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1위 기업임에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만큼은 점유율이 대만 TSMC의 3분의 1 수준이다. TSMC를 따라잡기 위해 시스템 반도체 기술 수준을 높이고 생산 설비를 늘리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경쟁사들 역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TSMC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14조2000억원)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고 인텔 역시 애리조나주에 200억달러(약 24조원)를 투자해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여기에 인텔은 미 정부에 자국 우선주의를 호소하며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TSMC도 일본의 자국 내 반도체 산업 기반 강화를 위한 정부의 예산 지원 수혜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만큼 향후 투자 효과에 대한 부담도 있다.
수주산업인 파운드리는 고객사 유치가 중요하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와의 만남도 ‘안드로이드 동맹’ 강화와 함께 향후 협력을 지속할 잠재적 파트너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 2016년 미국 선밸리 ‘앨런앤코컨퍼런스’ 출장이 지니 로메티 IBM CEO 등 IT(정보기술) 주요 인사들을 만나며 교류하는 장이었다면 이번 출장은 사업적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치열한 시장의 경쟁 상황을 직접 목도하고 온 셈이다.
비단 반도체 뿐만 아니라 모바일 분야에서도 미국 시장에서는 애플과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고 가전 분야에서도 글로벌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출장 중 실리콘밸리 DS미주총괄(DSA)·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미래 세상과 산업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면서 우리 생존 환경이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뉴 삼성’을 만들기 위한 혁신을 주문한 것도 이같은 경쟁상황에서 도태되지 않겠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뉴 삼성’을 실현할 노력이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극복해야 할 대내적 리스크들도 상존한다.
이 부회장은 출장 바로 다음날인 25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회계부정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에 참석했다. 끝나지 않은 사법리스크는 삼성 경영에 여전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출장을 통한 성과가 위기의식에서 끝나지 않고 사업적 결과로 이어지려면 안정적인 경영활동도 필요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출장에서 (테일러시 투자 결정)성과도 있었으나 위기의식도 함께 가져왔다”면서 “‘냉혹한 현실’은 반도체 뿐 아니라 산업 전반 변화의 속도에 맞춰 더 빨리 나가야 한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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