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시각] ‘오징어게임’이 된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감염병의 국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이 표류하고 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 사후 삼성 유족이 세계 최고 수준의 감염병 대응 인프라 구축과 연구 및 감염병 전문병원을 만들어 달라며 7000억원을 기부해 화제를 모았던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립계획이 반년이 넘도록 첫삽도 못 뜨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돈을 놓고 벌이는 부처 간 ‘동상이몽’ 때문이다.

서울 중구 방산동(미 공병단 부지)의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예정지에 2026년 완공이 목표인 이 병원 설립에 거액 기부금이 들어오자 정부 부담분을 둘러싸고 기획재정부와 국립의료원 간 충돌이 일어나 기본 계획도 매듭 짓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국립중앙의료원에 기부된 7000억원의 용처는 5000억원은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나머지 2000억원은 감염병 연구에 쓰기로 했다. 병원은 애초 2026년까지 100병상 규모로 준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애초 정부는 국가예산으로 중앙감염병병원 신설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삼성의 천문학적인 기부금이 생기자 사업비가 커졌고 기재부는 ‘큰돈’에 대한 적정성 재검토로 제동을 걸었다. ‘엄청난 공돈’이 생기자 ‘이런 큰돈의 용처는 기재부가 판단을 먼저 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국민으로선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분명 사기업이 용처를 밝히면서 써 달라고 기부한 돈을 그것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한 돈을 왜 기재부가 적정성 재검토란 명목으로 질질 끌고 있는지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돈이 없거나 부족할 때는 잘 준비되고 추진됐던 사업이 눈덩이 같은 돈이 생기자 오히려 사업이 지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최근 화제가 되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오버랩되는 것은 기자만의 상상력일까? 수백억원의 돈을 두고 생존게임을 벌이는 이 드라마의 내용과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을 두고 개인이 ‘기관’으로 바뀌었을 뿐 막대한 돈을 놓고 한시가 급한 전염병전문병원 설립에 이전투구하는 것이 뭐가 다른가. 애초 6월 출범 예정이던 기부금 관리위원회도 지난달에야 첫 회의를 했다고한다. 병원 설립 주무 관청인 보건복지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복지부 박향 공공보건정책관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감염병전문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변했지만 구체적인 이행계획이 없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 공병단이 있던 부지에 대한 토양정화작업에 문화재청의 근대건축물 조사계획도 남아 있어 계획대로 첫삽을 뜨기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당사자인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정 원장은 지난 8월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몇천억원 기부금이 들어왔다고 온갖 이해관계자가 불나방처럼 붙고 기재부는 자기 돈인 양 검증하겠다고 나서는데 복지부의 정책 의지는 실종된 상태”라며 “적정성 재검토가 만약에 내년 1월 정도까지 안 된다면 사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공무원들의 부처 간 이기주의에 의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간다는 사실을 안다면 각성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