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제한 검토하는 금융당국
서민·취약계층 실수요자 충격 우려
‘미리 계약’ 수요에 또 오른 전셋값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정부가 집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해놓고 전세대출까지 건드리는 게 말이 되나요. 내 집 마련 전까진 월세난민이 되란 말입니까?” (서울 거주 30대 직장인 A씨)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규제 방안을 포함한 가계대출 관리 대책을 이달 중 내놓기로 하면서 전셋집을 구하는 실수요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셋값 급등으로 필요한 자금은 더 늘었는데, 대출 한도가 줄면서 월셋방으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잡기 위해 규제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실수요자 대출도 가능한 한 상환 능력 범위 내에서 종합적으로 관리돼야 한다”며 실수요자가 찾는 전세대출, 집단대출 규제도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강화할 것을 시사했다.
현재 시장에서 언급되는 전세대출 제한 방안은 보증비율 축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전세대출 반영, 1주택자에 대한 대출 제한 등이다. 정부는 실수요자 피해를 줄일 것이라고 했으나, 모두 전세대출을 죈다는 측면에서 실수요자의 반발을 사는 동시에 서민·취약계층에게 충격을 줄 만한 방안으로 꼽힌다.
은행권은 아예 선제로 자체 관리 대책을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이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보증금 증액분 이내’로 축소한 후 하나은행도 뒤따랐다.
신한은행은 대출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을 이달 들어 5000억원으로 제한했다. 대출은 크게 영업점 창구, 비대면 채널, 대출모집인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총액 한도가 없던 모집인에 한도를 둔 것이다. 일주일 만에 한도가 거의 차면서 모집인 전세대출은 조만간 중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다 보니 당장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실수요자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전세대출 규제 제발 생각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경기권 거주 30대 여성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규제시기와 재계약시기가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계약금을 날리게 생겼다”면서 “계약금 4600만원은 지금껏 모은 재산의 절반이고, 이를 날릴 수 없으므로 2·3금융으로 손을 벌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집값 폭등으로 내 집 마련도 멀어졌고, 전셋값 폭등으로 좁은 집과 가까워졌다”면서 “이제는 전세 규제로 월셋방에 살게 생겼다”고도 덧붙였다.
또 다른 청원에는 “가뜩이나 올라버린 집값(전셋값)에 빌려야 하는 금액은 늘었는데 갑자기 대출을 막으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성실하게 한푼 두푼 모아 전세 들어가려는 것이 잘못이냐”는 내용도 담겼다.
전셋값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첫째 주(4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0.24% 올라 지난주(0.21%)보다 상승폭이 확대됐다.
해당 전셋값은 8월 넷째 주부터 4주 연속 0.25% 오른 뒤 추석연휴 등의 영향으로 9월 셋째 주와 넷째 주에 각각 0.23%, 0.21% 상승하며 2주 연속 오름폭이 작아졌으나 이번 주에 다시 커졌다.
전세매물 부족 현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세대출 제한 가능성이 제기되자 임차인들이 계약을 서두르며 전셋값 강세가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향후 전세대출이 제한되더라도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내리기보다는 전세를 반전세·월세 등으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