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노년 거주용 주택 관심 커져

내 집에서 말년 보내려는 욕구 가장 커

해외선 재택 간병 염두한 주택공급 활발

말년엔 무조건 요양시설로?…‘마지막 누울 집은 어디에’ [부동산360]
고령화 시대 노인들은 그들에게 맞는 맞춤형 주거공간을 원한다. [헤럴드경제DB]

초고령 사회가 시작되면 집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살기 편한 집이 있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도 집과 어울릴 때 훨씬 풍요롭다. 현역 때야 잠시 머물다 쉽게 옮겨 다닐 수 있지만 은퇴이후엔 쉽지 않다. 병까지 걸린 상황이면 더욱 불편하다. 시세차익도 좋지만 노구(老軀)와 안 맞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인생최후의 집은 판단기준이 달라진다.

지금까지 늙어 어디서 살지는 집을 대하는 자세로 실격이었다. 얼마나 오를 지만 판단기준의 전부였다. 실거주가 그러한대 투자용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초고령 사회가 목전인 상황에서 ‘비싼 집=좋은 집’의 등식은 의문부호와 맞닥뜨린다.

늙음에 맞는 맞춤공간이 있다. 질병·노환 등 각종 신체적 한계가 불거질수록 집은 불편·불안해진다. 고쳐보고 옮겨보지만 힘들긴 매한가지다.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면 특히 그렇다. 도의적이든 금전적이든 재택 간병은 노후 불씨로 작용한다.

많은 고령층이 내 집에서 최후를 맞고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병원·시설의 고약한 상황은 만족도가 낮다. 우리나라에서도 ‘거동이 불편해도 내 집에서 간병 관련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싶다’(56.5%)가 요양시설(31.3%), 가족합가·근거거주(12.1%)보다 많다(2020년 노인실태조사). 과거보다 교육수준·자립의식·금전상황이 개선됐고,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말년엔 무조건 요양시설로?…‘마지막 누울 집은 어디에’ [부동산360]
전남 장흥의 한 노인시설에서 노인이 자녀들과 앱을 통해 대화하고 있다. [KT 제공]

▶‘차익→간병’을 염두에 둔 노후거처 욕구변화= 한국사회의 역동성은 가히 놀랍다. 제도와 인식의 변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고정관념·기존상식조차 한 세대를 못 잇는다. 노후관련 이슈도 그렇다. 맞교환됐던 ‘자녀양육 vs 부모봉양’은 희박해졌다. ‘부모합가→자녀분가’가 자연스럽다. 대가족형 동거는 옛 이야기가 됐다. 간병 때는 대부분 ‘자택→병원·시설’로 의탁된다. ‘매장→화장’도 흐름이다. 부모세대에겐 적잖이 낯선 시대 변화다. 그럼에도 현역 세대 누구에게든 곧 닥칠 화두다. 1700만 베이비부머(1955~75년생)의 75세 전후 유병 연령을 고려하면 잔존시간은 고작 10년 뿐이다. 2030년부터는 연평균 85만명이 본격적인 유병 노후기인 75세로 진입한다. ‘대간병 시대’의 개막이다.

이에 발맞춘 집의 재검토는 시대 요구일 수밖에 없다. 거세질 간병 갈등을 해소할 인생 최후의 공간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최종 지향은 내집에서 마무리되는 삶이다. 정든 집과 가족 품에서 마침표를 찍는 것만큼 존엄한 죽음도 없다.

통계도 있다. 최후 공간의 선호는 자택(46%)·시설(38%)·병원(11%)의 순서(청년의사·2011년)다. 아쉽게도 현실은 병원(69%)이 자택(20%)보다 훨씬 많다(통계청·2016년). 시설까지 합하면 80%가 자택 이외다. 복지가 탄탄한 네덜란드(30%)는 커녕 미국(40%)보다 높다. 제아무리 비싼 집에 살아도 인생 최후를 함께 못하면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고령사회발 버스는 출발했다. 늘어날 간병은 정해진 미래다. 노후 마지막 바람이 재택 간병이면 집의 가치와 기능은 바뀌는 게 맞다. 절대 변수였던 시세상승의 기대감에서 간병효율의 최적화로 무게 중심을 옮길 필요가 있다. 혹은 시세상승 기대만큼 간병 환경을 동시에 고려하는 게 좋다.

공간구성·입지기반·교통편의 등 전통변수에 간병·의료시설을 새로운 유력변수로 덧대자는 의도다. 그나마 이는 지금의 상식에서 통할 뿐이다. 한국특유의 급격한 시대변화를 보면 앞날에 펼쳐질 ‘간병+주택’의 연결방식은 한층 혁신적일 수밖에 없다. 전에 없던 새로운 주거모델이 출현할 수도 있다. 정책이든 시장이든 욕구해결형 아이디어는 봇물처럼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사회에선 새로운 거주방식이 일반화된다. 슬로건은 ‘병원에서 지역으로’와 ‘시설에서 재택으로’다. 비인간적인 병원 임종의 불만·갈등이 커지자 인간본능의 재택임종을 위해 가용자원을 바꿔 배치하자는 움직임이다.

국가역할도 강조된다. 재택간병을 위한 의료개혁·포괄케어에 적극적이다. 시장은 거든다. 전후방 간병산업의 출발지로 집을 변신시킬 수 있다. 유병 노후에 접어든 거대인구의 개별욕구발 ‘주거+의료+생활’의 맞춤공간 제안모델이 그렇다. 간병을 재차 ‘의료+생활’로 분해한 접근으로 몸이 아프고 불편해도 얼마든 일상생활을 영위한다는 바람을 실현해준다.

말년엔 무조건 요양시설로?…‘마지막 누울 집은 어디에’ [부동산360]
강원 춘천시의 한 요양원에서 입소 어르신이 면회 온 딸과 작별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연합]

▶거대수요 불구 공급제한 ‘최후공간=블루오션’= 인생최후를 맞기에 적합한 집을 찾는 건 아직 고령사회에서도 낯선 화두지만, 거센 욕구일 수밖에 없다. 아직 일부에 국한된 수요지만, 곧 눈높이에 맞춘 세분화된 주거 모델로 일반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행사례를 보건대 신체건강·금전여력·추구가치별로 맞춤·특화된 노후공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공급주체는 영리기업이 많지만, ‘노후간병=고령복지’라 행정·비영리의 대응 모델도 늘어난다. 지역 활성화를 위한 주민중심 커뮤니티 사업형태로도 언급된다. 고령가구 중심으로 집에서 이웃과 교류하며 간병과 생활이슈를 해결하는 당사자형 은퇴마을이 그렇다.

비컨힐(Beacon Hill)모델처럼 미국에만 300개를 웃도는 풀뿌리 정주형 노인마을이 있다. 관계복지를 지향하는 영국의 서클(Circle)모델도 의료부터 생활까지 공동체가 자체로 해결할 수 있는 지역이다.

유럽에선 노인수요를 풀어줄 특화형 공유주택을 협동조합식으로 짓는 경우가 많다. 압권은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ies)다. 일종의 고령마을이자 계획형으로 만들어진 간병부가 주거단지다. 건강할 때부터 아플 때까지 이사하지 않고 연속 돌봄이 가능하다. 2000개소에 70~80만명의 입주자가 생활한다. 직장 출퇴근이 가능한데다 최근엔 세대교류형을 지향해 유치원·탁아소·학교 등 기반시설을 강화한다. 독립생활·생활보조·전문간병·재활센터·치매중심 등 각양각색의 맞춤형 집이 제공된다.

일본판 CCRC의 모범사례는 ‘미나기노모리(美奈宜の杜)’다. 일본최초의 CCRC인데 영주·주말별장·직주겸용 등 3대 스타일로 나눠 커뮤니티를 꾸렸다. 최근까지 고전했으나, 거주민 중 25%를 현역인구로 수혈해 세대교류형 마을로 변신했다. 노청(老靑)의 공동작업이 활발해지며 봉양과 부양의 세대교감이 이뤄진다. 대규모 개발단지형에서 소규모 마을재편형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선택지는 생각보다 적다. 잠재수요는 있지만 아직은 대부분 미스 매칭으로 보인다. 요양원·요양병원이 태반이고, 실버타운은 까다롭다. 내부 시설은 부족한데 비용은 의외로 부담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양질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말년엔 무조건 요양시설로?…‘마지막 누울 집은 어디에’ [부동산360]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배우는 한 노인 [서울시 제공]

무엇보다 저임금·장시간의 열악한 간병 현장이 많다. 간병보다 통제를 우선해 갈등사례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실버타운은 만족도가 높지만 초고가의 입주보증금·생활비를 내야 한다. 10억대 보증금에 1인당 월 400만~500만원 내는 곳도 있다. 최근에 보증금 수천만원에 월 30만~40만원 정도를 내면 머물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만족도는 낮다. 딜레마를 풀고자 다양한 전용시설 공급시도가 잇따르나, 아직은 제한적이다.

‘간병+주택’의 고민이 깊은 일본은 노인주택이 각양각색이다. 수요에 힘입어 다양한 공급을 시도한다. 건강도·경제력·가치관을 세분화해 일찌감치 최후공간을 마련하려는 예비인구까지 설득한다. ‘안단테구락부’란 중개모델처럼 5단계 건강상태별로 지역·가족·예산까지 아우른 매칭사업도 활황이다. 수급간극을 매워줄 유력주자는 ‘서비스부가고령자주택’이다. 시장이 앞다퉈 출사표를 던지는 사업인데 이종도전·합종연횡이 활발하다. 애매모호했던 우후죽순의 각종 노인공간을 통일한 형태로 관심이 뜨겁다. 입소를 위해 대기할 수 있는 공공시설(특별양호노인홈)은 부족하고 많은 민간시설이 가성비가 낮다는 점을 노렸다. 복지시설이 아닌 임대주택이나, 최저조건을 명문화해 안부확인·생활상담은 필수다.

말년엔 무조건 요양시설로?…‘마지막 누울 집은 어디에’ [부동산360]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반대로 다양한 추가서비스 등 자유도를 높여 시장참여를 유도했다. 그럼에도 간병에 포커스를 맞춘 민간시설(유료노인홈)에 붙는 비용보다는 저렴하다. 즉 건강한 일상생활이 전제된 자택감각을 강조하며, 필요할 때 간병서비스가 붙어 합리적이다. 만능은 아니다. 서비스·비용은 늘 부딪히며 사적·공용공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시장수급에 주목한 신사업·신모델은 분명하다. 인생최후의 공간모색을 위한 향후실험에 꽤 유효한 힌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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