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너머의 사람을 고민하는

현대차 ‘ZER01NE’ 프로젝트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팀 정체성

기업 밖 아트·테크·비즈니스 분야

크리에이터 협업 미래 솔루션 모색

디자이너, 미적·기술적 관점 중재

일상과의 공존 기준 실천사례 축적

“새로운 환경·관계의 중심...車 아닌 미래를 디자인 한다” [헤럴드 디자인포럼 2021]

4차산업혁명시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모빌리티에서 나온다. 정보통신기술의 집약적인 구현체로서 자동차는 더 이상 이동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과 관계의 중심에 모빌리티가 있다. 오는 10월14일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2021에선 로컬 모빌리티 그룹에서 벗어나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제로원(ZER01NE) 프로젝트가 선보인다.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자’를 지향하는 현대차의 미래 비전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지난 15일 서초동 현대자동차그룹 제로원 사무실에서 권영진 크리에이터 프로젝트 총괄 매니저를 만나 제로원 프로젝트의 전모를 들어봤다. 제로원 오피스 벽엔 철학자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새로운 환경·관계의 중심...車 아닌 미래를 디자인 한다” [헤럴드 디자인포럼 2021]
현대차그룹 오픈 이노베이션센터 제로원의 강남 스튜디오. 창의성을 표방하는 조직임을 보여주듯 오피스 한켠에는 미국 록밴드 너바나의 정규 2집 ‘네버마인드’를 비롯한 명반들을 LP 버전으로 구비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2018년 봄 출범한 제로원은 현대차가 당장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나 시대적 이슈들을 창의성에 기반해 새롭게 정의하는 조직이다. 기업 밖 아트와 테크, 비즈니스 분야의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손잡고 만들어낸 솔루션을 바탕으로, 실질적 제품 제작까지 ‘실천’하는 것이 목표다.

이날 권 책임매니저는 제로원팀의 정체성을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에서 찾았다. 아무도 써보지 않은 기술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앞서, 사용자들이 필요로 할 제품과 매력을 느낄 지점이 무엇일지를 상상하는 창의력을 오픈이노베이션 형태로 배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신기술이보편화 된 미래를 가정하고, 미래 사용자들이 원하는 경험이 무엇일지에 집중하는 역할이 제로원 프로젝트의 몫인 셈이다.

그는 “제로원은 단순한 로컬 자동차 기업이 아닌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자’를 목표로 한 현대차의 선발대인 셈”이며 “글로컬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용자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심리스(seamless)하고 평등한 보편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제로원 프로젝트에서 아티스트가 맡은 역할은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에 가깝다. 그는 “‘아티스트들은 사람과 사람, 대상과의 관계를 보고 그 사이를 어떻게 엮을까를 고민하는 시각을 제시하더라”며 “예술로 전시하기 위한 콜라보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으로 확장돼 실천적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게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티스트 가운데서도 디자너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는 “사용자와 기업 사이에서 미적 관점과 기술적 관점의 중재적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의 존재는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진취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건축·공학 분야 크리에이터에게 요구하는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 그 자체보다는 기술로 인해 달라질 사람들의 경험을 고민해보자는 제로원 프로젝트만의 색깔이 묻어난 지점이다.

그는 “퓨처 모빌리티를 주제로 한 공모에서 건축가들이 맡은 역할은 건물 설계 차원의 디자인은 아니다”라며 “이들에게 자율주행 자동차로 인해 또 한번 달라질 ’새로운 개념의 도시‘라는 관점을 제시하도록 하는 게 제로원 프로젝트의 접근”이라고 말했다. 이어 “’차창 밖 일상을 그래픽 효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과속방지턱을 지나가는 평범한 순간을 파도를 타는 윈드 경험으로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용자 중심의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제로원의 목표는 조직 내 구성원들에게도 맞닿아있다. 새로운 형태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사내 문화로까지 확산하는 것은 제로원의 또 다른 목표다.

그는 “제로원은 자동차 사업과 직결된 ’산학과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창의성의 영역을 다뤄본 시도이자 실천”이라며 “우리에게 없는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다른 분야의 창의성과 협업하다보면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는 사내 문화가 확산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새로운 환경·관계의 중심...車 아닌 미래를 디자인 한다” [헤럴드 디자인포럼 2021]
자율주행휠체어 실사. 제로원은 자동차 중심으로 적용돼온 자율주행 기술을 전동휠체어에 탑재해 미술관과 병원 등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차 제공]

최근 진행하고 있는 ’자율주행 휠체어 프로젝트는 야외와 도로 중심으로 진행돼 온 자율주행차 기술이 실내 공간에서는 어떤 부분들을 주목해야 하는지 연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 사례다. 그는 “100% 회사 밖에서 시작한 오픈이노베이션이 기업 내부 팀이 참여하는 형태로 바뀌어가는 선례를 만들었다는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 책임매니저는 제로원 프로젝트의 지속가능한 성공을 위해 “계속해서 사용자 경험과 관련된 실질적 사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제로원이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방식은 신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작품 전시에 그쳐선 안 된다”며 “얼마나 우리 일상에 영향을 줬고, 일상에 얼마나 공존했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실천을 위한 아이디어와 결과물을 쌓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 너머의 사람과 미래를 고민하는 제로원 프로젝트의 포부다.

김유진 기자, 사진=이상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