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기억과 도시의 기억, 건축재료로 활용 -100년 후 건축 화두, 인간의 정신
[헤럴드경제=이정주 기자] “건축재료 중에서 기억이라는 재료가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 토파즈룸에서 진행된 헤럴드디자인포럼2017 ‘HERALD X DGIT’ 행사 강연자로 나선 백희성 건축가는 청중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백 건축가는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 건축가 까르메 피젬과 위진복 건축가와 함께한 강연에서 건축 재료로서 ‘기억’을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건축에서 기억이라는 재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사람들 각각에게 기억이 있듯이 도시에도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설계하는 건축물은 주로 기억을 단서로 시작된다며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가장 먼저 프랑스 파리 시내 어느 대저택의 손잡이 사진을 보여주며 말문을 열었다. “이 손잡이는 씨(C)자형으로 가운데 사람 얼굴이 들어가 있어 굉장히 문을 열기 힘들다”며 “프랑스 혁명 이후 의회 멤버의 저택으로, 자신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혁명 이후 왕이 사라진 뒤에도 시민들은 의회를 왕의 ‘대체재’로 착각하며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며 “어린 아이들은 이 저택의 주인인 의회의원과 부딪힌 후 겁이 나서 머리를 움켜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의회의원이 자신을 낮추고, 시민들에게 편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고안한 게 바로 손잡이라는 해석이다. 저택을 방문하는 사람은 손잡이를 잡으면서 필연적으로 자신의 엄지 손가락이 얼굴 형상의 이마에 닿기 때문이다. 백 건축가는 이에 대해 “작은 손잡이에도 삶과 철학을 표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의 기억’이 담긴 한국의 전통 건축물인 탑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을 더하기도 했다.
백 건축가는 산속 바위 위에 세워진 탑 사진을 가리키면서 “과거 사람들의 기억이 공간에서 발현된 절정의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탑 아래를 보면 통상 하대기단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 사진에는 없다”며 “이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탑을 지탱하는 바위를 하대기단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서양인들은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우리 선조들은 산 전체인 바위 위에 탑을 얹어 오히려 부족함으로 거대한 완벽함을 얻어내는 지혜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백 건축가는 “바빌론과 에펠탑 등의 건축물은 자본과 권력만 있으면 언제든 만들 수 있지만, 이 탑을 만든 석공은 하나를 덜어내면서 거대함을 만드는 위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선조들은 이처럼 자신의 흔적들을 탑에 남겼다”며 “기억이란 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사례”라고 극찬했다.
강연 후 청중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백 건축가는 자신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향후 추구하는 목표를 묻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100년 후에도 사람들이 ‘건축의 형태’를 고민하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근본적으로 다른 것들, 인간의 정신을 담는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서로 다른 건 각각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경험은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발현되면서 성향으로 자리잡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간이 본질적으로 고민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