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훈 우아한형제들 최고제품책임자
“AI, 사용자 못먹는 재료까지도 판단”
미치 파오니 디아 스튜디오 공동대표
“매뉴얼대로 따를거라는 생각은 미친 짓”
권영진 현대차그룹 제로원팀 매니저
“기술 경계 허문 자율주행 휠체어 양산”
전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 팬데믹은 한편으론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시키며 디자인에도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등의 신기술이 디자인의 전통적 개념을 바꾸고 확장시키는 모습이다. 지난 14일 서울 세빛섬에서 열린 ‘헤럴드디자인포럼2021’에서는 이 같은 디자인의 변화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물론 새 시대의 철학과 디자인을 향한 시각 등 과감한 아이디어를 들을 수 있었다.
▶“기술이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 김용훈 우아한형제들 최고제품책임자(CPO)는 미래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김 CPO는 이날 ‘인공지능(AI) 시대의 인터페이스’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오픈AI가 개발한 자연어 처리 모델 ‘GPT-3(범용기반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를 언급하며 “이제는 컴퓨터가 텍스트를 이해하는 일을 넘어 디자인까지 직접 해주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소개했다.
화면에 오픈소스인 GPT-3를 활용해 손쉽게 디자인을 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네비게이션 바와 버튼을 만들어달라’는 텍스트를 입력하자 GPT-3 알고리즘이 디자인 소프트웨어인 피그마에 디자인 시안을 완성시켜 준다. AI의 진화 속에, 디자인은 ‘창의성’의 영역이며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김 CPO는 “디자인은 사용자의 반응을 염두에 둔 제품을 만드는 일”이라며 “이제는 (AI를 통해) 사용자의 피드백 하나 하나를 분석하고 유저들에 대한 반응 모델을 손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의 인터페이스는 기술이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 별도의 피드백 단계 없이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끔 변화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각의 시대에서 청각의 시대로, 사용자를 몰입하게 하는 문장 구현력, 사용자경험(UX) 라이팅이 중시되면 디자이너의 역할이 점점 좁아질 수 있다고도 그는 전망했다. 김 CPO는 “배달의민족의 기술적 목표는 사용자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는 대신 어제 먹은 음식, 오늘의 날씨, 사용자가 못 먹는 재료, 주문 타이밍 등을 고려해 원하는 음식을 바로 캐치하고 주문까지 완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제약 풀고 새로운 사유와 창작의 방식으로” = 미치 파오니 디아(DIA) 스튜디오 공동대표는 기술 발전에 따라 전통적 방식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규칙이 아닌 수단일 뿐(Tools, not Rules)’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기존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결과물이 필요한 곳에서 지속적으로 디자인을 만들어 낼 사람을 위한, 하나의 공식으로 만들어진 생산을 위한 안내서”라고 규정했다. 간판을 페인트로 칠할 때 로고를 정확히 복제하도록 그리드가 구성돼있는 뉴욕의 지하철(MTA) 디자인 시스템, 스위스 연방 철도 디자인 시스템 등이다.
파오니는 “포토샵같은 프로그램이 없었던 시절이기에 규칙에 기반한 엄격한 매뉴얼이 필요했다. 흥미롭고 대단한 기록”이라면서도 “지금까지도 많은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과거를 참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 단순 복제 디자인의 시대가 아닌데도 규칙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체에 대한 내용, 색상 규정, 아트 디렉팅에 대한 방향성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보고 황당한 적이 많았다”며 “200페이지 짜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놓고 그걸 따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는 고정된 형식의 포스터만을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진화하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오니는 “우리가 할 일은 인터랙티브한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로써 디자인을 생각하는 것”이라며 “제약을 풀고 새로운 사유와 창작의 방식을 가능케 하고, 과거에 했던 방식보다 훨씬 풍부한 경험을 하도록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경계 허무는 시대 도래” = ‘다양성과 보편성을 위한 모빌리티’를 주제로 한 권영진 현대자동차그룹 제로원팀 책임매니저의 강연은 기술 변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을 보여줬다. 그는 모빌리티의 개념을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닌, ‘삶을 위한 기본적 권리’라는 보편성의 측면에서 접근했다. 또 신기술과 인프라가 특정 집단에 편중돼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기술과 인식 격차를 개선하기 위한 제로원의 자율주행 전동휠체어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권 책임매니저는 “그간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비장애인 대상 제품이나 서비스에 집중했고, 자동차란 이동수단의 역사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부족했다”며 “자율주행기술이 차량에 적용되면 운전에 불편을 느꼈던 분들도 새롭게 자동차를 이용하게 되는 등 기술이 경계를 허무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율주행 전동휠체어에 대해선 “고령화 시대에 이동불편을 겪게 될 이동약자를 보편적으로 다룰 수단이 필요했다”며 “자율주행 전동휠체어는 장애인 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탑승 전과 후의 상황이 여전히 어려울 이동약자 전반을 배려해 기존 이동수단과 새로운 기술의 연결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약자의 접근성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닌 기존 기술을 활용하고자 하는 관심과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율주행휠체어에 앞서 장애인의 이동성 향상을 위해 ‘20년엔 스타트업과 함께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전동휠체어를 만들었고, 이 휠체어는 불과 5개월만에 만에 검증을 마치고, 올해 말부터 양산을 준비중이라며, “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모두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디자이너와의 협업과 연대의 중요성도 한번 더 짚었다. 그는 “모빌리티의 개념은 이동이라는 근본적 의미에서 확장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일’이 될 때 더 큰 의의를 지닌다”고 말했다. 배두헌·김유진·신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