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개방형 ‘모두의 공간’으로 재설계
포르투갈 MAAT, 지역재생 모범
공공의 공간은 사람과 사람 ‘연결’
팬데믹 이후의 공동체 공간 부각
지속가능 건축 위해 신소재 개발 중
자연과 인간·자연과 기술 조화 시도
“공간과 자연은 호화로울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있고,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을 ‘공예의 공간’으로 직조한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 ‘영국 왕실의 보물’로 불리는 이곳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공예 박물관이다. 지하철 ‘피카디리 라인’을 타고 사우스 켄싱턴 역에 내려 만나는 고풍스러운 건물은 먼 발치에서부터 존재감을 발한다.
영국의 건축가 아만다 레베트(Amanda Levete)와 그가 운영하는 AL_A 건축 스튜디오는 대대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폐쇄형 박물관’이었던 V&A를 ‘모두의 공간’으로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아만다 레베트와 AL_A 는 돌담으로 꽉 막혔던 박물관에 ‘두번째 출입구’를 만들었다. 덕분에 런던 시내에서 훤히 들여다 보이는 박물관의 안마당은 ‘모두의 광장’이 됐고, 누구나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됐다.
오는 10월14일 열리는 헤럴드 디자인포럼의 연사로 나선 아만다 레베트는 최근 서면인터뷰를 통해 “(이 프로젝트는) 지난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V&A에서의 가장 큰 건축 설계였다”고 돌아봤다. 그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박물관의 건물을 지키고, 공공의 안마당을 열기 위해 지하에 새로운 전시실도 함께 만들었다. V&A의 안마당이 ‘시민의 공간’으로 재탄생하자, 2017~2018년 방문자는 전 시즌 대비 26% 증가했다. 연간 방문자는 440만 명으로 늘었다.
“오늘날의 공공 공간은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관계를 형성하며 아이디어를 교환하는데, 공공의 공간은 사람들과 연결될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진보를 만들어내죠. 공공건물의 설계에서 중요한 가치는 단지 건물이 아닌 도시의 담론을 형성하는 개념화된 디자인을 해야한다는 점이에요. 코로나 팬데믹은 충격적인 경험이지만 변화의 시점을 제공했어요. 미래의 공간은 더욱 다양하고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의 중요성이 부각되리라고 봅니다.”
이번 포럼에서 레베트는 ‘건축의 중요성’을 주제로 팬데믹 시대에 바라본 공공건축의 가치와 지속가능한 건축을 탐구한다. 그는 이번 주제와 관련해 “우리는 미래를 위해 설계하고,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건물을 짓는다”고 말했다.
레베트와 AL_A의 디자인 철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됐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예술, 건축, 테크놀로지 미술관(MAAT)’은 지역 재생 프로젝트의 사례로 볼 수 있다. MAAT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물결처럼 우아하게 이어진 미술관은 도시와 해안이 어우러진 ‘자연친화 건축’을 보여준다. 미술관 아래로 계단을 만들어 시민들이 오갈 수 있도록 했고, 옥상은 공공의 공간을 설계했다. MAAT는 개관 당일 리스본시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8만 명이 다녀갔다. 레베트는 “이는 도시 속 새로운 공공 공간이 가지는 매력이자, 공공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 몇 년 사이 레베트의 주요 관심 분야는 ‘지속가능한 건축’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자연과 기술, 자연과 인간의 조화”는 레베트가 이어가고자 하는 ‘미래의 건축’을 향한 꿈이다. 이미 팬데믹 이전 옥스퍼드 대학과 함께 ‘투명 목재’라는 신소재를 개발 중이다.
“나무에서 추출한 목질소를 가공해 쇠보다 강하고 유리보다 절연이 잘 되고, 빛이 잘 투과하는 소재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 ‘투명한 나무’인 거죠. 자연과 기술을 결합해 우리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건축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목표예요.”
최신 프로젝트 중 하나인 에너지 회사 제너럴 퓨전(General Fusion)의 ’자화 표적 핵융합(MTF, Magnetized Target Fusion) 시설도 이런 흐름의 연장이다. 건물의 설계 방향성이 명확하다.
레베트는 “핵융합의 잠재력과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핵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도록 건물에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곳엔 핵융합 설비를 중심으로 전시공간, 사무실, 연구실이 방사선으로 배치됐다. 자연과 과학의 현장이 건축물 안에서 표현된 것이다.
“자연과 과학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은 미래에 대한 낙관론에서 비롯됐어요. 인류의 미래에 대한 헌신과 믿음을 건축에 담았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자연과 기술이 조화를 이룬 건축은 큰 혁신을 이룰 겁니다. 이러한 건축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