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귀국해 체포된 나발니 결국 실형
지난해 개헌 반발한 직후 독극물 중독 증세
18일 만에 깨어나 지난달 귀국했으나 체포
전역에서 ‘소련 붕괴 이후 최대규모' 시위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는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재판에서 결국 실형에 처해졌다. 이번 판결로 러시아 사회는 더욱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 전망이다.
특히 러시아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나발니 석방 요구 시위는 이미 소련 붕괴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로 비화되고 있어 그의 정치적 존재감이 향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 시노놉스키 구역법원은 2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시법원에서 연 나발니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 취소 공판에서 심리 시작 9시간여 만에 집행유예를 3년6월(42개월) 실형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이미 이 사건 관련 1년을 가택연금 상태에서 보낸 나발니는 앞으로 2년6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한다.
지난 2014년 12월 프랑스 화장품 회사 ‘이브 로셰’의 러시아 지사 등으로부터 3100만루블(약 4억5000만원)을 불법 취득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당시 징역 3년6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2017년 이 사건에 대해 러시아 법원의 판결이 자의적이며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으나, 러시아 대법원은 유죄 판결을 번복하지 않았다.
집행유예 시한은 2019년 12월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2017년 법원 판결로 한 차례 1년 연장됐다. 또한 러시아 당국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인 지난해 말 나발니가 월 2회 감독기관 출두 신고 의무 등을 지키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이날 법원은 나발니의 집행유예 의무 위반 사실이 인정된다며 집행유예 판결 취소를 선언했다.
나발니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이 사법 절차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석방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라며 “한 사람을 투옥시켜 수백만명을 겁주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인 나발니는 러시아 정부 인사들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며 야권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특히 2019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출마가 제한되자 야당 지지를 호소, 여당을 사실상 패배로 몰아붙이며 푸틴을 견제할 수 있는 정치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최고 80%의 지지율을 등에 업고 1999년 이후 22년간 장기 집권해 온 푸틴 대통령에게 나발니는 성가신 존재였다. 그는 대통령 3연임 불가 조항을 피하고자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가며 맡았고, 2018년엔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렸다. 지난해엔 4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 자신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임기가 보장돼 사실상 종신 대통령 지위를 획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발니는 지난해 7월 개헌안 국민투표가 치러지자 이 투표는 사기라며 반발했다. 다음달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여객기 기내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고, 독일 베를린의 한 병원에서 18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독일 전문가들은 나발니가 옛 소련 시절 개발된 군사용 신경작용제 ‘노비촉’ 계열 독극물에 중독됐다고 발표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지난달 17일 귀국한 나발니가 공항에서 체포되자 극동 블라디보스톡에서 서부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까지 11시간대에 걸친 약 100여개 도시에서 석방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현지 비정부기구 ‘OVD-인포’는 소련 붕괴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23일 110개 이상 도시에서 10만명 이상(현지언론 추산)이 참여했고, 31일 대규모 시위에서 체포된 인원은 5135명에 달한다고 OVD-인포는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