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태일·박혜림·김민지 기자] “한 때 세계 3위 LG전자 휴대폰,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LG전자 휴대폰 사업이 존폐 기로에 직면했다. LG전자는 20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업 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사업부 통폐합부터 철수까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노키아와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시장점유율 3위를 달리던 LG전자였다. 초콜릿폰과 샤인폰, 프라다폰 등 피처폰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했다. 휴대폰으로 연간 1조원대의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로의 전환기 초기 대응에 주춤한 탓에 지난 10년 넘게 고전을 이어 왔다. LG 벨벳, LG 윙 등 ‘피처폰 영광’ 재현을 노리고 최근까지 야심차게 신제품을 선보였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대반전을 예고한 ‘LG롤러블’까지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30년간 국내 휴대폰 시장 한축을 담당한 LG전자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초콜릿폰으로 ‘1000만대 신화’…프라다폰으로 이어진 LG폰 황금시대
LG폰의 이름을 세계 시장에 알린 대표주자가 바로 초콜릿폰(모델명 LG-SV590, LG-KV59 00, LG-LP5900)이다.
2005년 11월 국내 시장에 첫 선을 보인지 1년 반만인 2006년 4월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LG전자 폰으로선 처음으로 ‘텐밀리언셀러폰’ 반열에 올랐다. 2006년 한 해동안 판매된 LG전자 휴대폰 전체 판매량 2650만 가운데 27%인 650만대가 초콜릿폰일 정도였다. 이후 최종적으로 전 세계에 2000만대 이상 팔렸다. 초콜릿폰 이전에 전 세계적으로 1000만대 이상 판매된 피처폰은 삼성전자 ‘이건희폰’, ‘벤츠폰’, ‘블루블랙폰’, 단 3종에 뿐이었다.
초콜릿폰은 출시 초기부터 블랙컬러의 미니멀한 외관과 레드컬러의 터치패드가 조화된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국내외 휴대폰 시장의 감성 마케팅 열풍을 몰고 왔다. 무엇보다 세계 시장에서 LG휴대폰이 프리미엄 휴대폰으로 입지를 구축할수 있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초콜릿폰을 시작으로 이듬해(2008년)엔 샤인폰이 텐밀리언셀러폰에 이름을 올렸고, LG KP100(3000만대), LG KG270(1500만대) 등이 차례로 누적 판매 1000만의 실적을 올렸다. 잇딴 히트작 출시로 ‘휴대폰 명가’ 이미지를 굳혔다. 휴대폰 판매량도 연산 1억대를 넘어서며 글로벌 제조사로 발돋움했다. 모토로라를 제치고 노키아, 삼성전자에 이은 세계 3위 휴대폰 제조사가 됐다.
피처폰의 영광이 ‘독’…스마트폰 ‘늑장 진입’에 폰 사업 내리막길
피처폰의 영광은 외려 독이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된 201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7년 애플이 첫 아이폰을 공개했을 때부터 피처폰의 시대는 끝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LG전자는 피처폰을 고집하다 2010년대에 들어서야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위를 팬택에 내주고 난 후 2012년 ‘옵티머스 G’ 라는 브랜드로 G 시리즈의 서막을 열었다.
공격적인 투자의 결과로 G 시리즈는 초반 상승세를 이어갔다. 2014년 출시된 ‘G3’는 LG스마트폰 최초로 누적 판매량 약 1000만대를 판매하며 최대 실적을 올렸다. LG전자 MC사업본부는 그해 3161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음해인 2015년부터 적자 행진의 신호탄이 켜졌다. 천연 가죽 디자인의 ‘G4’와 함께 특장점 오디오 기능에 집중한 V시리즈를 내놨지만 첫 제품부터 기기 결함 문제가 발생했다. ‘V10’는 전원이 스스로 꺼지고 켜지고를 반복하는 ‘무한부팅’ 논란이 일어, 무상 수리라는 전력을 남겼다.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계 최초 모듈형 스마트폰 ‘G5’도 모듈 사이 틈이 벌어지는 유격현상이란 결함이 발생했다. 또 다른 플래그십 브랜드 V 시리즈의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삼성전자, 애플 등 타 경쟁사들에게 주도권을 뺏긴 상황이었다.
‘G·V’ 버린 LG폰…제 2의 도약 꿈꿨지만 ‘찻잔 속 태풍’ 그쳐
지난해 LG전자는 결단을 내렸다. G·V시리즈 브랜드를 폐지하고 ‘환골탈태’를 선언했다. “LG빼고 다 바꿨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디자인을 확 바꾼 ‘LG벨벳’을 선보였다.
지금까지 없던 ‘물방울 카메라’, ‘3D 아크 디자인’ 등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앞세우며 과거 ‘초콜릿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 프리미엄폰과 비교해 가격은 낮추고 성능은 프리미엄급을 유지하는 ‘매스 프리미엄폰’을 지향하는 전략을 폈다. 적자 행진의 고리를 끊어내겠단 의지였다.
실제로, 이름에서 연상되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벨벳은 디자인에서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 판매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당시 ‘아이폰SE 2세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20’ 등 경쟁 제품에 밀려 판매가 부진했다.
이어 나온 스위블폰 ‘LG윙’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9년 취임한 이연모 MC사업본부장은 새로운 혁신 전략 ‘익스플로러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첫 작품으로 ‘LG윙’을 선보였다.
‘익스플로러 프로젝트’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LG전자의 실험적 의지를 보여줬다. 스마트폰의 진화된 사용성에 무게를 두고, 성장 가능성 있는 영역을 발굴해 나가겠다는 새로운 전략이었다.
‘LG윙’은 화면 2개를 돌리는 방식의 새로운 폼팩터(기기 형태)에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역시 시장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LG윙’의 국내 누적 판매량은 10만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1조 흑자’에서 ‘누적 손실 5조’로 쇠퇴
LG전자는 초콜릿폰과 프라다폰 등 2G폰 히트에 힘입어 MC(무선통신)사업본부에서 2008년, 2009년 2년 연속 1조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했다. 사실상 LG전자 휴대폰 사업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당시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등장하며 휴대폰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스마트폰 시대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LG전자는 2010년 MC사업본부에서 6540억원의 적자로 돌아섰다. 이듬해 LG전자는 6년 만에 1조원의 유상증자까지 동원해 스마트폰 만회에 나섰지만 이미 경쟁사들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부터 적자를 기록한 이래 23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누적 손실 규모는 5조원에 달한다.
스마트폰 판매량도 2015년 5970만대를 정점으로 하락세다. 2019년 연간 3000만대가 깨졌다. 시장조사기관 SA(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LG전자 스마트폰 판매량 순위는 9위, 점유율은 2.2%에 그쳤다.
2019년 국내 생산을 접고 인력도 계속 줄이고 있다. MC사업본부 임직원은 2015년 기준 약 7400명에서 2020년 3분기 기준 약 3700명으로 절반 가량 감소했다.
이날 LG전자는 “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업 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LG전자는 사업 운영 방향이 결정되면 구성원에게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권봉석 사장은 구성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MC사업본부의 사업 운영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원칙적으로 구성원의 고용은 유지되니 불안해 할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