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화두 내로남불

소모적 논쟁 가득한 해

2004, 2005년과 판박이

어떤 기사를 읽으면서 ‘아 언젠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을 받진 않으셨나요? 뉴스는 돌고 돕니다. 오늘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뉴스더라도, 과거에 맥락이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뉴스를 읽으며 접하는 ’기시감‘을 정리해 드립니다.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남이 땅을 사면 망국적 땅투기, 내가 땅을 사면 사려깊은 노후대책.’

1993년 출간된 ‘남이하면 스캔들 내가하면 로맨스’(도서출판 모아)이란 책에 담긴 글귀입니다. 사람들이 특정 사안을 바라볼 때 드러내는 ‘이중잣대’를 해학적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책 제목은 이후에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약간 변형이 이뤄졌고, 언론과 정치권은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즐겨쓰는 표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예스24]
[예스24]

내로남불로 집약되는 이중잣대는 올해 한국사회를 표현하는 ‘한 마디’로 선정됐습니다. 매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결정해 발표하는 교수신문이 ‘아시타비(我是他比)’를 고른 건데요.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나는 맞고, 남은 틀리다’는 뜻입니다. 고전 가운데 유래가 있지 않은 신조어인데, 많은 교수들이 올해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판단했습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정치권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소모적 논쟁이 끊이질 않았던 걸 감안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는 아시타비를 추천한 이유를 “올 한해 유독 정치권이 여야 두 편으로 딱 갈려 사사건건 서로 공격하며, 잘못된 것은 기어코 남 탓으로 공방하는 상황이 지속돼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사안을 두고서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 식의 판단과 언행이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보편화되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아시타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교수신문 홈페이지 캡처]
아시타비.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교수신문 홈페이지 캡처]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한 건 올해로 딱 20번째입니다. 역대 선정 사례를 살펴보면, 그 해의 전반적인 시대상이 어땠는지 가늠할 수 있죠. 올해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자성어가 선정된 건 2004년과 2005년입니다. 그만큼 사회 사정이 올해와 닮았다는 뜻이겠지요.

2004년엔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습니다. ‘무리를 짓고 다른 자를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당시 교수신문은 “정파적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것이 (해당 사자성어) 선정의 가장 큰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엔 노무현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이전,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극한대립을 보였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 올해의 사자성어 선정에 참여했던 교수들은 여야의 대립 가운데 설득은 사라지고, 당리당략만 남았다고 평가했습니다.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DB]

2005년의 사자성어는 상화하택(上火下澤)이었습니다. 직역하면 ‘위에는 불, 아래는 못’인데요 물과 불처럼 서로 대립하고 분열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성어입니다. 2004년 국회발(發) 소모적 대립이 이듬해까지 이어진 결과로 풀이됩니다.

당시 정대현 이화여대 교수(철학)는 교수신문에 “현재의 모습들은 비판과 토론의 문화가 생성되는 초기의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