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악용 가능성

소·부·장 경쟁력 약화 우려

26일 산자위에 발의안 상정

한국형 디스커버리(증거수집제도·K-디스커버리) 제도가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업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확산하고 있다. ▶관련기사 2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1년6개월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부장 육성에 나서야 할 정부와 국회가 K-디스커버리 법제화를 강행하면서 특허 경쟁력에 취약한 소부장업계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는 재판에 들어가기 전 특허소송 당사자들이 증거와 정보를 상호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기 위한 제도다. 저비용·고효율의 증거수집절차를 도입해 소송절차상 기업부담을 경감하고 특허권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취지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특허를 많이 보유한 글로벌 기업들이 K-디스커버리를 악용해 경쟁력이 약한 국내 소부장 업체에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우려에도 정부와 국회를 중심으로 제도 시행을 위한 입법과정은 빨라지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올해 8월 24일)과 같은 당 이수진 의원(9월 24일)이 각각 특허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데 이어 오는 26일에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에서 이수진 발의안이 상정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 이 의원 안이 상정되면 지난 9월 상정된 김정호 의원안과 함께 병합심사로 법제화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시의성이다. 작년 일본 수출규제 여파로 한국 소부장 업계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노출된 상황에서 지금 K-디스커버리를 강행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정부의 소부장 육성 정책에도 역행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K-디스커버리가 시행되면 특허를 보유한 기업은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자료를 요구하고 자료훼손 제재, 전문가에 의한 증거조사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고객사 거래나 연구·개발(R&D) 등 사업활동이 모두 중단된다. 국내 소부장 기업의 매출 타격은 물론 성장성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특히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업계는 국내 소부장 업체와 해외 업체간 특허 출원건수 체급차이가 크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일본 등 외국 기업의 소부장 기업의 특허 출원건수는 평균 5653건으로 한국 기업(평균 548건)보다 10.3배 많았다.

업계에서는 2014년 애플과 삼성이 ‘세기의 특허분쟁’ 당시에도 나오지 않았던 디스커버리 제도가 문재인 정부의 공정가치 개념으로 등장했다며 반도체 소부장 기술 패권을 해외 업체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K-디스커버리는 시기상조라고 반발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K-디스커버리는 우리 국회와 정부가 국내 기업이 아닌 외국기업의 특허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국내 소부장 기업을 피고로 전락시키고 정부의 소부장 산업 육성 정책에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