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한국형전투기(KF-X) 개발사업은 창군 이래 최대 무기 연구·개발사업으로 불린다. 전투기 개발에 8조8000억원, 개발 완료 후 120대 양산에 10조원이 투입되는 총 18조8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사업이다. 전투기 개발에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해외 유수의 선진 전투기 제조회사들이 극비에 부치고 있는 전투기 핵심기술을 이전받거나 스스로 개발해내야 한다.
전투기 핵심기술 중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불리는 장비가 AESA(능동전자주사배열·Active Electronically Scanned Array) 레이더다. 애초 우리 군은 지난 2013년 공군 차세대전투기(F-X)로 미국 방위산업기업 록히드마틴으로부터 F-35 40대를 약 7조4000억원에 수입하는 대가로 전투기 4대 핵심 기술을 이전받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 의회가 최종적으로 기술 이전을 거부해 2016년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내 방산업계는 독자 개발을 추진한다. 그리고 4년여 만인 올해 8월 7일 AESA 레이더 시제품을 출고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전 세계가 '불가능'이라고 했던 과업을 불과 수 년 만에 이뤄낸 것이다.
▶세계 전투기 제조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AESA 레이더 사업은 2016년부터 오는 2026년까지 정부 예산 4000억원을 투입하는 한국형 전투기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국방과학연구소가 기술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한화시스템이 KF-X 1호 시제기에 장착될 AESA 레이더 시제품을 제조한다. 결과적으로 국과연과 한화시스템은 4년이라는 짧은 시간,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며 AESA 레이더 하드웨어 개발 성공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전투기의 눈’ AESA 레이더 개발의 성공은 세계 전투기 제조업계를 발칵 뒤집어놓는 대사건으로 여겨진다. 이 레이더를 통해 우리 군은 전투기가 1000여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추적해 대응하는 능력을 자체적으로 갖추게 됐다. 레이더업계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알려진 이스라엘에서는 실제로 국산 AESA 레이더의 성능을 확인하고, 호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AESA레이더, 현대 공중전에서 승패 좌우=과연 AESA 레이더는 기존 MSA(기계식 주사배열)에 비해 어떤 점이 개선된 장비일까.
MSA 레이더는 송신부와 수신부가 따로 되어 있고, 회전하면서 회전 반경에 따라 포착되는 대상을 표시해준다. 반면, AESA 레이더는 소형 송수신 통합모듈 수백~수천여개가 레이더 전반부에 고정된 형태에서 회전하지 않고 각종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기계식인 MSA 레이더는 충격이 가해질 경우 레이더 자체가 먹통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ESA 레이더는 일부 모듈이 파손되더라도 각각의 모듈이 독립된 레이더 역할을 할 수 있어 웬만한 충격에도 기능상의 문제가 없다고 한다.
AESA 레이더 사업이 의욕적으로 추진되면서 국내 중소 방산업계에도 큰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 한 중소 방산업체는 AESA 레이더에 사용되는 통합모듈 소자의 국산화에 성공하는 등 레이더 소재·부품·장비 개발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AESA 레이더는 기계식과 달리 목표물이 탐지되면 신속하게 소프트웨어가 작동해 레이더빔을 증가시키거나 방향을 전환하는 등의 자동 대응이 이뤄진다. 자동 대응이 가능해 고속 기동하는 물체를 추적하는 능력도 기계식에 비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AESA 레이더 장착 여부는 현대 공중전에서 전투기의 생존 및 전투의 승패와 직결되는 셈이다.
공군 관계자는 “작전 측면에서 AESA 레이더를 장착한 전투기는 MSA레이더를 장착한 전투기보다 훨씬 우위의 전력이 된다”고 말했다.
▶최첨단 전투기 필수장착…미사일방어체계에도 활용=오늘날 세계 각국의 최신형 전투기들은 거의 예외 없이 AESA 레이더를 장착하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강 전투기로 알려진 미국 공군의 F-22, F-22의 ‘보급형’ 격으로 최근 생산돼 전 세계의 미국 우방국에 판매되고 있는 F-35 스텔스 전투기, 미 해군 항공모함 함재기에 탑재된 F/A-18E/F 슈퍼호넷 등이 모두 AESA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미 방산업계는 또한 AESA 레이더를 F-16 등 미 공군이 운용하는 기존 전투기에 장착해 전투기 능력을 높이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AESA 레이더의 활용 분야는 전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상의 레이더, 해상의 함정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미군이 운용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체계의 AN/TPY-2 레이더, 우리 군이 이스라엘에서 수입해 운용 중인 ‘그린파인’ 탄도미사일 조기경보용레이더도 AESA 레이더의 한 종류다. 우리 군이 개발 중인 ‘한국형 사드’ L-SAM(장거리미사일요격체계)와 지상용 탄도미사일조기경보레이더의 국산화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AESA 레이더 국산화의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군이 이번에 KF-X 개발에 최종 성공하면 국산 기본훈련기인 한국형 훈련기 KT-1 웅비, 국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과 함께 군용기 ‘라인업’을 완성하게 된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은 먼저 현재 개발 중인 한국형 전투기에 AESA 레이더를 장착해 시험 운용한 뒤 실전 배치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면, 먼저 국산화가 완료된 T-50 초음속 훈련기 등에 AESA 레이더 추가 장착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꾸준히 수출돼 해외시장에서 호평받고 있는 T-50은 동남아시아와 남미 등 일부 국가에서 전투기로 활용되고 있어 국산 AESA 레이더 개발과 함께 해외 수출에 있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현재 F-35와 함께 우리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하고 있는 F-15K와 F-16 등의 전투기는 해외 수입 항공기여서 국산 AESA 레이더 탑재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산 항공기에 국산 AESA 레이더를 장착하려면 항전장비 통합을 위해 해외 제작업체의 인터페이스 관련 기술 이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군은 내년 하반기부터 1년간 KF-X에 장착된 AESA 레이더의 지상시험을 실시하고, 2022년 하반기부터 2026년까지 비행시험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