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배우 김태훈(45)은 2002년부터 18년동안 55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참으로 다양한 역할을 했다. 독립영화, 단막극, 미니시리즈를 가리지 않았다.
최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에서는 은주(추자현 분)의 남편인 가정의학과 의사 윤태형으로 출연했다. 태형은 극 후반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면서 반전을 야기하는 인물이다. 지난해 SBS ‘시크릿 부티크’에서도 성소수자 역할을 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또 다른 역할이었다.
이 정도의 작품 경력이면 연기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김태훈은 “(연기는) 시작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참여하다보면 몸에 익어 편한 작업도 있고 해도 해도 영(0)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편한 작업으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하면 안될 것 같다. 원점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기는 해도, 성장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번 작품도 그 중의 하나다.”
김태훈은 ‘가족입니다’를 하면서 “아직도 시작인 건가. 이번에 깨달은 것은 나이가 50~60세가 되어도 시작일 수 있겠다는 것이다. 끝나는 순간까지 그런 느낌이 반복된다. 연기라는 일은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김태훈은 “(그럼에도) 두려움 보다는 한번 부딪혀보자다. 그러다 보면 성장해있을 것이다”면서 “현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있다. 보고싶은 그들의 연기가 있다. 제 삶이 깊지 못하고, 경험의 한계가 있지만 삶의 표현이 깊고, 진심이 묻어나는 캐릭터를 통해 그 삶 안에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연기라는 직업을 잘 해나가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연기한 윤태형은 부부애와 동성애라는 두 가지를 표현해야 했다. 김태훈은 “그냥 동성애자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어떤 마음인지, 진심으로 아프고 외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내 실제의 삶과 달라 표현이 힘들었지만, 내가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토씨, 표정 하나하나 일상적인 삶으로 보일 수 있게 신경을 썼다고 한다. 영화처럼 뱉어 놓고 여러가지 작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동성애자인 윤태형은 어떻게 말하려고 했을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상대역인 추자현(김은주 역), 감독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눴다.
“윤태형은 흔히 있는 캐릭터일 수 있다. 부잣집 아들, 보수적인 검사 아버지, 권위적인 의사 엄마에 가족간에 사이가 안좋은 집안. 윤태형도 그런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엘리트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을 거다. 어느 순간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느끼는 순간 세상을 깨달았을 것이다. 소수자의 삶을 나(윤태형)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에 괴로웠다. 그것을 결국 은주가 이해해주게 된다. 은주와는 이혼후 친구로 남게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태훈은 윤태형이라는 인물의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들을 입체적으로 잘 표현해냈다. 이런 내적 고민이 있었기에 시청자들이 그의 외적 표현을 공감할 수 있었다.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건 은주와 그 식구들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너무 미안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그만둬야 겠다는 것. 이때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는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태형이 가족의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김태훈은 배우들의 단톡방이 가족대화방 같았다고 했다. 그는 “가족적이었다. 나와 김지석은 가족이 아니었는데도 살뜰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님도 인물 마다 감정을 잘 표현하며 글을 써주셨고, 감독님은 입봉작인데도 촬영장 공기안에서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고 배우들에게도 세심하게 대해주셨다”고 말했다.
극중 장모로 나온 원미경(이진숙 역)에 대해서는 “내가 과거 출연한 ‘외출’을 잘 봤다고 문자를 보내주시고, 내가 사위여서 끝까지 말을 놓지 않았다. 원미경 선생님이 쫑파티를 하고 그 다음날 새벽에 미국으로 떠나셨는데, 둘째딸 한예리, 막내 신재하가 공항까지 가 배웅했다. 배우들의 관계는 이 정도면 설명 끝이다”고 했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김태훈은 1997년 극단 한양레퍼토리 단원으로 배우의 길을 시작했다. 모교의 최영인 교수로부터 “(‘가족입니다’를) 재밌게 본다. 밝은 역할도 좀 해라. 예능도 하고”라는 문자가 왔단다. 설경구, 이문식, 권해효, 이정은도 같은 과 출신이다. 그는 “연기할때는 진짜를 말해야 한다고 배웠다. 흉내 내지 않고 그 인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다작배우 김태훈은 차기작도 벌써 결정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발레 선생님으로 나온다. 인터뷰 후 발레를 배우러 간다고 했다.
“도전의식이 넘치는 건 아니고 나를 찾는 건 피하지 않겠다. 다양한 모습으로 봐주시는 것에도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