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美 경쟁적 양산 공급과잉 글로벌 성장 둔화로 소비 먹구름…이라크 유전시설 타격은 미미
국제유가가 날개없이 추락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주말보다 8센트(0.1%) 내린 배럴당 85.74달러에 마감했다. 2012년 12월 이후 22개월만에 최저가다.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브렌트유는 1.32달러(1.5%) 떨어진 배럴당 88.89달러로 마감, 3년 10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국제유가 급락 배경은 ▷원유공급 과잉 ▷세계 경제 둔화 우려 ▷지정학적 리스크 제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가격 전쟁 ▷달러 강세 등이 꼽힌다.
▶‘검은 황금’ 쏟아지는데=국제유가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인은 공급과잉이다. OPEC의 생산량은 하루 3100만배럴로, 적정수준보다 200만배럴 가량 많다. OPEC은 9월이 비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전월대비 증가시켰다.
세계 원유 공급에 불을 지르는 것은 셰일혁명을 등에 업은 미국이다. 미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2012년 615만3000배럴에서 올해 797만7000배럴로 늘었다. 올 연말까지 90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추세라면 미국이 2017년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석유 생산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밖에 리비아가 내전 이전 수준으로 생산량을 회복했고 러시아의 원유 생산은 옛소련 붕괴 이후 최고 수준이다.
▶세계경제는 먹구름=원유 공급은 넘쳐나는데 이를 소비할 세계 경제는 중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둔화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새로운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다”고 전했다. 다음 주 발표될 예정인 중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8%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분기 GDP 성장률 7.5%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유럽은 러시아와 갈등이 깊어지면서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는 견조하게 회복되고 있지만 연비 효율 개선 등으로 석유제품 소비는 임계점에 봉착했다.
▶‘검은 눈물’ 리스크는 기우=이라크와 시리아 사태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경계감은 희미해지고 있다. 이라크는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전투를 계속하고 있지만 이라크 남부 유전 시설 타격은 없었다. 시리아의 원유생산은 크지 않아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관측에 따른 달러강세는 유가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유가는 달러 베이스로 거래가격이 책정되기 때문에 달러가치가 오르면 유가는 떨어진다. 일본 석유천연가스ㆍ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의 노가미 타카유키 분석가는 “미국 경제 개선 기조 속에 금리인상 관측이 강해지고 있다”며 “외환시장에서의 달러 강세가 유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OPEC發 가격전쟁=사정이 이런대도 세계 최대 원유 카르텔 OPEC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맏형 격인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유럽에 이어 11월 아시아 원유 판매가격도 낮췄다. 이란 역시 아시아 대상 원유가격을 2008년 이래 최저치로 하향조정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란이 재정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수출가격을 배럴당 140달러를 유지해야 하지만 대폭 할인했다고 지적했다.
모간 스탠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가 원유 가격 하락을 견딜수 있는 반면, 다른 소규모 산유국은 재정부담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유가 하한선은?=국제 유가의 전망은 암울하다. 배럴당 8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온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3일(현지시간) “OPEC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원유 공급을 지속한다면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쿠웨이트 석유부 장관 알리 알 오마이르는 “유가가 배럴당 77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며 “이는 러시아와 미국산 원유의 경제적 생존 능력을 압박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파티 비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원유의 손익분기점은 80달러선”이라고 지적했다.
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