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위 제도 도입 후 심의위 진행 중 구속영장 청구 최초 사례
인권보호와 자체 검찰 개혁의 취지까지 훼손하고 무력화했다는 비판
사법리스크 장기화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 우려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4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이 부회장 측이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수사팀이 아닌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을 받아볼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검찰이 해당 권리를 행사한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강행하면서 인권 보호와 자체 검찰 개혁의 취지까지 훼손하고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이 부회장과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전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를 법원에 접수했다.
이 부회장 등에게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김 전 사장은 위증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변경에 이르는 과정이 모두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합병 비율을 정당화하려 했다고 보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또 이번 수사의 단초가 된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의 회계 사기 의혹 역시 의도적인 ‘분식회계’가 맞다고 보고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도 영장에 적었다.
이날 검찰이 전격적으로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이 부회장 측이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개최의 취지와 실효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8년 검찰이 심의위 제도를 도입한 이후 심의위 관련 절차가 진행되는 중에 수사팀이 구속영장 청구 등 수사 일정을 강행한 것은 이번 이 부회장 건(件)이 처음이다.
특히 구속영장 청구는 기소를 전제로 하는 만큼 수사 계속 여부,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에 대한 심의위의 판단과 별개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수사심의위 규정의 맹점을 악용한 편법이고 위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 수사팀은 삼성 수사에 대한 스스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보이지만 검찰 조직은 ‘권한 남용’ ‘위장 개혁’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그러잖아도 대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에 직면한 삼성에 사법 리스크까지 더해지며 그룹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초유의 경제위기, 4차산업혁명 시대 도래에 따른 반도체 패권전쟁 등 삼성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삼성은 사법 리스크의 조기 종결을 기대해왔지만 이날 영장이 청구되며 삼성 내부에는 당혹감이 가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회계 감사만 해도 몇 달이면 종결되는데, 한 사안에 대한 수사만 1년6개월을 끌고 가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글로벌 기업으로서 투자나 고용 등에서 선도적 역할을 주문받고 있는 삼성에 총수의 구속영장 청구는 글로벌 신인도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