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즐거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이미 80여년 전 네덜란드 역사문화학자 요한 아위징아는 ‘호모 루덴스’라는 저서에서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놀이를 통해 발전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놀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며, 인류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원초적 속성이라는 것이다.

최근 보건 당국 조사 결과,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도 높게 실천한 비율이 90%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국민이 ‘은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화되고 있는 감염병 위기와 고립감은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던 호모 루덴스를 뜻밖의 방식으로 깨우고 있다.

시작은 미약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이용자들은 집에 있는 동안 그린 그림이나 아이들이 만든 종이접기작품들을 게시했다. #JoyFightsFear 해시태그 운동과 함께 모이기 시작했다. ‘즐거움으로 공포와 맞서 싸우자’는 뜻의 이 해시태그를 각자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나 포스트와 함께 올리는 식이다. 외로움을 잊은 듯 즐겁게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사람들에서부터, 잊고 지냈던 일상 속 즐거움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모습들을 다양하게 찍어 공유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소셜 미디어가 호모 루덴스의 열연을 받쳐주는 든든한 무대 역할을 해내고 있는 셈이다.

유명인들도 놀이행렬에 동참했다. 축구공처럼 가지고 놀던 두루마리 휴지를 스크린 바깥으로 차서 다음 주자에게 넘기는 인스타그램의 #ToiletRollChallenge에는 메시, 손흥민 등 저명한 축구선수들이 앞다퉈 나섰다.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으로 영상을 선보였는데 그야말로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팬들과 나눈 것이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적인 공연도 방구석 1열에서 무료 스트리밍으로 관람한다.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이 자기 집에서 펼친 깜짝 인스타그램 라이브 공연도 화제였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발견할 수 없었던 즐거움이자 공연문화다.

게임을 질병으로까지 규정했던 세계보건기구(WHO)는 18개 게임회사와 손잡고 ‘떨어져서 함께 플레이하자’를 의미하는 ‘Play Apart Together’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 게임회사 CEO는 “수십억명의 게이머가 게임을 즐김으로써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실천해)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고 비유하기도 했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 아직 일상에서 활용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이 신기술도 우리 앞에 즐거움으로 다가서고 있다. 국내 부산시립박물관은 예술작품을 온라인에서 감상할 수 있는 VR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VR 쇼룸을 통해 신차를 소개했고, 부동산 업계에는 VR 모델하우스가 등장했다.

누구도 그 끝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위기다. 바이러스의 종식과 상관없이 상시적으로 방역 태세를 갖추며 살아가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일상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전례 없는 시기를 함께 견뎌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현재 위기를 극복하는 비상 전략과 함께 즐거움과 여유도 필요하다. 장기전일수록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 역시 물리적 방역 못지않게 심리적 방역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즐거움이야말로 최고의 심리처방 중 하나다. 코로나19에도 즐거움은 계속돼야 한다. 오늘 하루, 어떤 호모 루덴스가 될지 고민해보면 어떨까?

정기현 페이스북 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