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한국군에 '헌병' 병과 창설
-청일전쟁 후 日헌병대 한반도 진출
-대한제국도 헌병사령부 운영했으나
-1907년 군대 강제해산으로 폐지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한국군에서 '헌병'(憲兵) 명칭이 1948년 헌병 병과가 창설된 지 72년 만에 사라졌다. 일본 영향으로 1900년 처음 대한제국 헌병대가 설치된 점을 감안하면 120년만에 '헌병' 명칭이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됐다.
헌병을 군사경찰(Military Police)로 개칭하는 내용의 군사법원법 개정법률이 지난 4일 관보에 고시됐다. 이로써 군은 헌병이란 명칭 대신 군사경찰을 쓰기 시작했다.
육·해·공군 헌병의 최상위 기관인 국방부 조사본부는 헌병 표지를 군사경찰로 교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방부 조사본부장 휘하에 육군헌병, 해군헌병, 공군헌병, 해병헌병이 배속돼 있다.
육군 군사경찰은 기존 '육모방망이' 형상 위주의 육군헌병 마크를 권총 2자루, 칼, 돋보기 형상이 들어간 새 마크로 교체했다. 새 마크의 권총은 전투지원 기능을 상징하고 칼은 전투기능, 돋보기는 과학수사를 의미한다고 육군은 설명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헌병이란 명칭은 우리보다 앞서 1870년대부터 일본에서 먼저 사용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현재도 남아 있다"라면서 "헌병이란 의미가 법 집행, 즉 수사에만 한정되어 있어 현재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병과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고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헌병은 현재 군대 안에서 질서 유지와 군기 확립, 법률이나 명령 시행, 범죄 예방과 수사 활동, 교도소 운용, 교통 통제, 포로 관리, 군사시설과 정부 재산 보호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
헌병 명칭을 처음 사용한 건 일본이다.
일본은 1896년 사실상 조선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벌인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대한제국에 헌병대를 처음 설치했다. 이후 대한제국에도 1900년 헌병사령부가 설치됐다.
대한제국이 일제를 견제하기 위해 친러정책을 표방한 가운데 한국 및 동북아 지배권을 놓고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그해 7월 한국민들의 항일투쟁 탄압 등을 위해 '치안담당'의 군사경찰제도를 시행했다.
일본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국을 상대로 을사조약을 체결,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등 사실상의 국권을 침탈했다. 이어 1907년에는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켜 대한제국 헌병이 폐지했고, 1910년 합병조약을 강압적으로 체결하기에 이른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우리 군에서는 '헌병' 명칭이 다시 등장한다. 헌병의 연혁 자료를 보면 1947년 3월 군감대가 설치됐고, 이듬해 3월 11일 조선경비대 군기사령부가 창설됐다. 이어 1948년 12월 15일 군기병을 헌병으로 개칭하고 헌병 병과가 창설됐다.
6.25 전쟁 막바지인 1953년 3월 24일 육·해·공군 합동의 헌병 총사령부가 창설됐으나, 정전협정 다음날인 1953년 7월 28일 헌병 총사령부가 폐지됐다. 1960년 10월 10일 국방부 합동조사대가 창설됐고, 이후 국방부 조사대-국방부 합동조사단-국방부 조사본부로 명칭을 변경해 오늘날에 이른다.
헌병 출신 예비역들은 "우리나라는 고종황제 때 비록 일본식 모델인 헌병을 토대로 헌병사령부를 설치했으나 1907년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때 헌병도 폐지됐다"면서 "1949년 7월 '헌병령'이 공포됐으며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일본을 모델로 했던 대한제국의 헌병에서 벗어나 미국식의 헌병으로 거듭났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군 당국은 헌병이 일제강점기 헌병대를 연상케 한다는 의견에 따라 헌병의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국방부가 전군 의견을 수렴한 결과 새로운 헌병 명칭으로는 군사경찰(40%), 군경찰(軍警察)(30%), 군경(軍警)(17%), 경무(警務)(5%), 헌병(3%), 기타(5%)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명칭 변경 추진 과정은 순조롭지 못했다.
국방부는 지난 2018년 11월 14일~12월 24일 헌병 명칭을 군사경찰로 바꾸기 위한 군인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계획대로라면 이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2019년 1월 통과됐어야 했으나 1년 넘게 표류했다.
법제처가 2019년 1월 14일 개정안을 접수한 이후, 해당 개정안을 고치려면 상위 법률인 군사법원법과 군인사법 등을 먼저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에 국회 법개정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법제처는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하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할 때는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상위법인 군사법원법과 군인사법에는 여전히 '기무부대'로 돼 있으나, 군인사법 부칙에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명칭을 바꾼 것이다.
다시 법제처는 기관의 동일성이 인정돼 실무상 문제가 없다는 해석에 따라 군인사법 부칙을 통해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했다. 군 쇄신을 위해 법 해석을 유연하게 한 결과다. 그러나 이와 관련, 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지적을 당하자 법제처가 헌병 명칭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나온 것이다.
결국 국방부는 헌병 명칭 변경을 위해 군사법원법과 '군에서의 형의 집행 및 군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 개정을 추진했다.
해당 법안들은 지난달 9일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월 28일 국무회의 의결, 2월 4일 관보에 고시되면서 '군사경찰' 시대의 막이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