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딸 쌍둥이까지 세 딸을 두고 있는 필자의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 은비 영어 공부를 시켜도 돼?”필자가 심리학을 공부했으니까 심리학적으로 네 살짜리 큰 딸에게 영어 공부를 시켜도 되는지를 판단해 달란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말했다. “네 맘이 편하면 시켜라.”그랬더니 좀 더 심리학적으로 이야기를 해달란다. 이웃집 애들은 벌써 시작했는데, 그래도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가만있자니 자기 딸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란다.
그래서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 “시켜보고 은비가 좋아하면 계속하고, 싫어하면 그만하라고.” 그래서 시작한 조카의 영어 공부. ‘컴퓨터’를 ‘컴퓨러’로 발음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냉장고’는 영어로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내잉장앙고우’라고 자신 있게 말해서 배꼽을 잡았다. 제 딴에는 컴퓨터가 컴퓨러가 되듯이 냉장고도 그렇게 되는 것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요즘 어린이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다. 서울 강남에는 어린이 영어 유치원과 학원이 비싼 수업료에도 불구하고 성업 중이다. 영어를 언제부터 교육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언어와 관련된 뇌는 7세부터 13세 사이에 민감하다는 것이 대뇌생리학자들의 의견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만약 조기 영어 교육을 시킨다면 노래와 놀이, 연극 속에서 아이가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단어 공부나 알파벳을 가르치고, 문장 바꾸기 같은 것을 연습시키는 것은 어른의 눈으로 본 영어 교육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서 실패하지 않았든가.
발달 단계에 따라 발달 과업이 달라지듯이 교육에도 때가 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고립아에 관한 연구들이다.
1920년 인도 정글에서 두 늑대 인간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대략 1세와 8세로 추정되는 여자아이들이었다. 이들을 키운 미도나 풀이라는 목사 부부에 의해 그들은 ‘아말라’와 ‘까말라’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이 아이들은 사람이면서도 인간의 행동양식보다는 늑대의 행동양식을 따랐다. 네 다리(?)로 걸었으며, 생고기를 손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입으로 먹었다. 이들은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고, 얼굴 표정이나 정서는 없는 듯이 보였다.
목사 부부는 이들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켰지만 아말라는 1년도 채 못 되어 사망했고, 까말라는 1929년 요독증에 걸려서 죽을 때까지 9년 동안 겨우 직립보행과 보통사람처럼 먹는 법을 익혔을 뿐, 언어는 고작 45단어밖에 익히지 못했다.
아말라와 까말라 이야기는 아무리 인간이라 하더라도 인간 사회 속에서 인간다운 교육과 학습을 제때 받지 못하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어린 시절, 특히 생애 초기의 경험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심리학자인 헵(Donald O. Hebb)은 인간이 세상을 배우는 원리로 신경생리학적 학습(neurophysiological learning)을 주장했다. 그는 특히 유아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 때의 경험이 개념, 사고유형 그리고 세상을 지각하는 방법을 발달시켜, 이것들이 지능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헵의 주장은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말라와 까말라는 신경생리학적인 학습과정에서 어릴 때 신경세포체와 국면계열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에는 세상에 대한 정보를 수용하더라도 그 정보를 창조하거나 재구성하지 못했다. 즉 어린 시절에 겪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했기 때문에, 끝내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되지 못하고 죽어간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어린 시절의 적절한 자극과 보살핌이 필요하며, 결국 조기 교육은 인간의 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소련에서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을 때, 미국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깜짝 놀람 그 자체였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아이들의 조기 교육을 통해 소련보다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고자 1960년대에 Head Start라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 계획은 조기 교육이 아이들의 지능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한 예로 이 프로그램에서는 특수교사가 2~5세된 빈민층의 아이들을 주당 몇 차례씩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었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다. 나무토막 쌓기, 색깔 이름 대기, 그림 그리기 등의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한 결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아동들보다 지능지수가 5~10 정도 상승했다. 이러한 결과는 조기 교육의 소박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바쁘다. 어른들보다도 더 바쁘다. 부모들이 조기 교육이나 영재 교육이니 하면서 아이들을 달달 볶기 때문이다. 부모들 마음이야 다 같은 것 아닌가? 자기 자식이 남의 집 애들보다 뒤쳐질까 걱정되고, 기왕이면 다른 집 애들보다 더 뛰어나길 바라고, 부모가 자식을 잘 키우고 싶어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모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 당연한 것이지만, 진화론적으로도 당연한 이치다. 사람들은 종족을 보존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지금보다 나은 상태로 2세를 이어나가도록 해야 하는 진화론적인 사명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배움이 있어야만 한다. 배움이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부모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배움이 아이의 신체적․정신적 발달에 따라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게 된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조기 교육은 권장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의 조기 교육이 반드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신체적․정신적 발달과 적성을 고려한 교육이 필요한 것이지, 뭐든지 일찍 가르치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얘기다.
아이들의 적성과 소질을 무시한 채 어린 시절부터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억지로 가르치려 하다가는, 부모에 대한 미움, 사회에 대한 불신감만을 키워줄 우려가 있다. 그보다는 화목한 가정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 어떤 조기 교육보다도 바람직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적절한 자극과 관심을 쏟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조기 교육이 될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지도 않는데, 부모의 뜻에 따라 무리하게 이것저것 조기에 가르치려고 하다가는 아이의 성질만 조기에 버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글 : 최창호 심리학박사 / 컬럼리스트 / 헤럴드에듀 전문위원 겸 홍보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