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유학시절 산업용오일 생산 ‘첫 사업’ 도전
비누·화장품 사업으로 빚갚고 기업기반 일궈
호남석유화학 인수로 롯데케미칼 시작 알려
신동빈회장 첫 경영 커리어 맡겨 애정 각별
‘신격호 명예회장은 껌을 팔아 거대 유통왕국을 일궜다’는 세간의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신격호의 롯데가 풍선껌에서 시작한 것은 맞지만 사업가 신격호의 시작은 전혀 다른 곳에서 싹을 틔었다.
신 명예회장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44년 도쿄 인근에 윤활유 공장을 세우면서다. 사업가 신격호의 첫 출발점은 화학이었던 셈이다. 신 명예회장이 화학을 첫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은 그가 와세다대 화학과 출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삼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신 명예회장은 훗날 계열사 사장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빚을 얻어 사업을 방만하게 해서는 안된다.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미래 사업 계획을 강구해 신규 사업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순탄 할 것 같던 사업은 처음부터 실패의 쓴잔으로 돌아왔다. 미군의 폭격을 받아 가동도 못하고 불타버리고 만 것. 신 명예회장이 평소 화재 등 안전사고에 각별히 신경을 쓴 것도 이 때의 경험 때문이다.
신 명예회장의 신뢰와 뚝심이 힘을 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45년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이 대거 귀국하는 와중에도 신 명예회장은 “나를 믿고 돈을 빌려준 사람을 두고 갈 수는 없다”고 했다고 한다.
실패한 기업가 청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유를 배달하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그렇게 꼬박 꼬박 모은 밑천으로 신 명예회장은 46년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짓는다. 신 명예회장은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아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는 능력을 발휘했다. 신 명예회장은 당시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준 하나미쓰에게는 고마움의 표시로 집까지 한 채 사 주었다.
신 명예회장이 이후 유통, 부동산, 관광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롯데의 성장을 일궜지만 처음부터 유통의 그의 가슴 속에 자리잡았던 것은 아니다.
신 명예회장은 애초 제철사업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제철사업이 국영화로 정부의 방침이 바뀌면서, 그는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선 중화학공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전후 일본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철강, 석유화학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을 눈여겨 본 것이다.
이를 위해 롯데는 1979년 호남석유화학의 지분을 인수하며 석유화학사업에 첫 발을 내딛게된다. 현재 롯데케미칼의 전신이 바로 호남석유화학이다.
이후 신 명예회장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식품·유통 등에 쏠린 그룹의 사업 다각화를 위해 석유화학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86년에는 자신이 직접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현 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의 한국 롯데 첫 커리어를 호남석유화학에서 시작하도록 하며 석유화학사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이 이처럼 각별히 여겼던 롯데의 석유화학 사업은 롯데케미칼의 승승장구로 결실을 맺고 있다. 그룹 전체 순이익의 절반 가량이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화학 부문에서 나올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롯데케미칼은 이달 기준 시가총액 7조700억원,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018년 기준 각각 16조5450억원, 1조9686억원을 달성하며 글로벌 20위권의 종합화학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에는 북미지역 셰일가스 에탄크래커 사업 진출을 위해 미국 루이지애나에 31억달러를 투입한 생산설비를 준공하기도 했다. 롯데케미칼은 이를 통해 국내 1위, 글로벌 7위의 에틸렌 생산 기업으로 등극하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껌, 과자로 상징되던 롯데가 종합화학 사업에서 이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된 것은 그룹의 미래를 고민한 신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이 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유재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