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꿈 안고 밀항…막노동 하며 학업
48년 종업원 10명과 롯데 설립 ‘풍선껌 대박’
한일수교 이후 모국진출 재계 5위그룹 일궈
30년 숙원 롯데월드타워로 마천루 새 역사
“내 일생 일대의 최고의 수확이자 선택이다”
19일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라는 사명을 작명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만큼 신 명예회장은 ‘롯데’라는 사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왜 그토록 롯데라는 사명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까?
롯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 ‘샤롯데’의 애칭이다. 롯데라는 사명도 샤롯데에 대한 신 명예회장의 흠모에서 시작됐다. 신 명예회장이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향하는 밀항선을 탄 것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였다.
신 명예회장은 훗날 “베르테르는 그의 여인 샤롯데에 대한 사랑에 있어 정열 그 자체였습니다. 그 정열 때문에 그는 즐거웠고 때로는 슬펐으며 그 정열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불사를 수 있었습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소설가가 꿈이었던 신 명예회장은 하지만 그의 꿈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1948년 일본인들이 서구문물이라며 싫어하던 풍선껌으로 출발한 롯데는 지금은 자산규모만 115조원이 넘는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83엔 밀항선에 꿈을 싣다=신 명예회장은 1921년 10월 4일 영산 신씨 집성촌인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에서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 명예회장은 당시 형편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73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 세 번째 부자였지만 논 열다섯 마지기에서 나온 것을 식구들이 먹고 나면 조금 남는 정도”라고 회고했다.
신 명예회장은 자신이 태어난 울산 둔기리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댐 건설로 수몰돼 사라진 둔기리 사람들을 위해 43년간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위로 잔치를 열기도 했다.
어린시절 10~20㎞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서 통학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웠던 청년 신격호는 41년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신문·우유 배달을 하며 와세다대학 이학부인 와세다 고공 야간부 화학과를 마쳤다.
신 명예회장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했다. 우연히 만난 사업가 하나미쓰가 청년 신격호를 높게 평가하면서 사업자금 5만엔을 빌려 준 게 기업가 신격호의 첫 출발선이다.
▶무모할 것 같던 풍선껌…신격호의 인생을 바꾸다=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신 명예회장의 집무실엔 지금도 ‘롯데 그린껌’의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한다. 그린껌은 신 명예회장의 인생을 바꾼 제품이다.
신 명예회장은 48년 6월 종업원 10명과 함게 롯데를 설립한다. 롯데가 처음으로 내놓은 제품이 풍선껌이다. 풍선껌은 당시만해도 일본에서 반감이 컸던 제품이다. 서구문물이라는 반감에다 배고픈 시절 풍선껌같은 사치품이 팔리겠냐는 주변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신격호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모험은 대성공이었다. 풍선껌을 작은 대마무 대롱 끝에 대고 불 수 있도록 풍선껌과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하는 감각과 창의성은 신 명예회장의 작품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000만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보내는 등 기발한 마케팅 능력도 선보였다.
껌 시장에서 성공한 신 명예회장은 초콜릿과 캔디류, 빙과류 시장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다. 실패도 없었다. 그는 단기간에 시장을 장악하는 뛰어난 능력과 수완으로 롯데를 일본 내 대표적인 식품기업으로 키워냈다. 신 명예회장은 1988년에는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4위에 오르기도 했다.
▶65년 김포공항 첫 발…숙원을 이루다=귀화하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신 명예회장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소설가 꿈을 안고 밀항선을 탔던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기업가로 성장하자 이번엔 또 다른 꿈을 꿨다. “모국에서 사업을 펼치고 싶다”는게 그의 숙원이었다.
65년 한·일 수교로 경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신 명예회장의 꿈도 한 발짝 다가왔다. 65년 오른손에 서류가방을 꼭 쥐고 김포공항 활주로를 걸어나가는 신 명예회장의 사진은 그의 한국 역진출 꿈이 첫 발을 딛든 순간이기도 했다.
“‘품질본위, 박리다매, 노사협조’를 바탕으로 기업을 통해 사회 및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기업이념”이라는 롯데제과(67년)의 광고는 신 명예회장의 꿈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평가다.
롯데제과는 쥬시후레쉬, 스파이민트, 빠다쿠키 등 공전의 히트 상품을 내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신 명예회장은 73년에는 서울 소공동에 지하 3층, 지상 38층 규모의 롯데호텔을 준공한다. 롯데호텔은 당시만해도 ‘동양 최대의 마천루’로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은 6년간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무모한 도전을 현실로 바꿨다. 1억5000만 달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와 맞먹는 엄청난 규모다.
‘롯데 50년사’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75년 보고서에 10층 규모의 백화점을 세우고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면세점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신 회장이 당시만 해도 무모한 것처럼 보이던 관광과 유통에 관심을 둔 이유는 “특별한 자원을 들이지 않고도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79년 12월 17일 신 명예회장은 마침내 소공동 롯데호텔 옆에 롯데쇼핑센터(현 백화점)를 오픈한다. 개관일엔 서울시민 30만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수도권 인구가 800만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흥행이었다. 롯데쇼핑센터는 개점 100일 만에 입장객 수 1000만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는 진기록도 세웠다.
▶마천루의 꿈…그리고 시련의 불씨=‘서울의 랜드마크’에 대한 신 명예회장의 꿈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88년부터 ‘제2롯데월드 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된 초고층 프로젝트가 바로 그 것이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는 프로젝트 시작 30여년만인 2017년 비로소 완공될 정도로 신 명예회장에게 적지않은 도전을 남겼다. 이는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 시발점이기도 했다.
게다가 시련의 불씨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후계 구도에서도 싹트기 시작했다. 일본 롯데는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대표가, 한국롯데는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이 맡는다는 암묵적인 동의는 거미줄처럼 얽힌 지배구조로 인해 최대 위기를 맞았다. 롯데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신 명예회장 부자에 대한 기소로 이어졌다. 1심은 신 명예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35억원을 선고했다.
신 명예회장은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법정 구속되는 수모는 면했다. 하지만 자식들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법원의 한정후견 결정을 받고, 경영 비리 의혹으로 세 부자가 나란히 법정에 서는 등 쓸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중증 치매로 정상적 판단이 어렵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하게 되면서 사실상 신 명예회장의 경영활동은 불가능해졌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징역 3년과 벌금 30억원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다만 ‘형집행을 정지해달라’는 신 총괄회장 후견인의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신 명예회장은 끝내 장남과 차남의 화해를 보지 못하고 영면에 들어갔다. 신소연·박로명·이유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