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름 없는 가수가 ‘음원 절대 강자’로 불리는 대형 기획사 소속 아이돌을 줄줄이 제치고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했다. 2017년 10월 발표된 닐로의 ‘지나오다’가 그것. 난데없이 6개월이 지난 2018년 4월, 이 노래가 97위에서 47위까지 뛰어오르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1시간이었다. 작은 기획사와 무명의 가수는 ‘바이럴 마케팅’의 결과라고 했으나, 이 일은 씻을 수 없는 의혹으로 되돌아왔다. ‘음원 사재기’ 의혹이다.
닐로 측은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문체부는 이에 “사재기 행위라고 결론내기 어렵다. 특이한 패턴을 보였다고 해서 해당자를 불러 조사할 수 없다”고 밝혀 사태는 일단락 되는 듯 보였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가수 박경이 바이브, 송하예, 장덕철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음원 사재기 의혹을 지적한 데 이어 4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SBS)가 해당 의혹을 다시 꺼내며 가요계는 한 번 더 ‘음원 사재기’ 여파를 겪고 있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의심만 했던 일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가요계 관계자 A씨는 “음원 사재기는 최근의 사태로만 빚어진 논란이 아니다”라며 “이미 몇 해 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논란이고, 다들 짐작하고 있던 일이 터지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SM·JYP·YG·스타제국 등 4개 기획사는 ‘홍보 목적으로 디지털 음원 사용 횟수를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 검찰 수사를 요청한 바 있다. 2015년에도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에서 특정 가수에게만 ‘팬 맺기’를 한 동일 패턴 아이디가 무더기로 발견된 사례로 있었다.
방송에서 논란으로 엮인 가수들의 관계자는 ‘바이럴 마케팅’의 결과라고 해명했으나, 업계 관계자들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 B씨는 “중소 기획사 소속의 밴드나 무명의 가수들이 바이럴 마케팅만으로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오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라며 “아무리 음악을 잘 하는 뮤지션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기회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100위권에 이름을 올리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홍보대행업체로부터 음원 차트 순위권에 올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가수와 기획사도 적지 않았다. 또 다른 관계자 C씨는 “앨범 발매 이후 브로커로부터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액수는 보통 수억원 대에 달한다”며 “수익을 나누는 방식도 7(브로커)대 3, 8대 2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현재 방송의 후폭풍은 거세다. 방송 이름이 거론된 가수들의 소속사는 즉각 반박 보도 자료를 냈다. 닐로와 장덕철이 소속된 리메즈엔터테인먼트 측은 “깊은 유감을 넘어 죽고 싶을 만큼 참담함을 느낀다”며 “실체 없는 의혹제기로 끝난 방송 이후 더욱 심각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카더라’ 제보와 여러 조작 정황 자료 화면이 마치 저희와 관련 있는 듯한 뉘앙스로 방송다”라며 “연관성이 없다면 강력하게 정정보도를 요청 드린다”고 말했다.
남성 듀오 바이브가 소속된 메이저나인도 공식 입장문을 통해 “6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으나 저희가 해명한 부분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며 “방송 내용은 마치 저희가 진행했던 마케팅이 음원 사재기 의혹을 피하기 위한 겉치레일 뿐이며, 실제로는 사재기 업자를 통해 음원 사재기를 진행했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게 편집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도 방송 과정에서 소속 그룹명이 사재기 의혹에 연관된 것처럼 노출되자, “본인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수년간 노력해온 아티스트에 방송으로 인해 씻을 수 없는 명예훼손과 억측과 소문이 확산되고 있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됐다”며 “제작 과정 실수 인정과 사과, 다시보기 등 정정을 방송사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일파만파 퍼진 음원 사재기 논란으로 차트에 대한 신뢰도 역시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12월 한 달간 문화콘텐츠 순위 지표에 대해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음원 차트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4명 중 1명(25%)에 불과했다. 특히 음악에 관심이 많고, 순위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젊은 층에서 음원차트(만 16세~24세 15.5%, 만 25세~32세 21%, 만 33세~44세 20%, 만 45세~54세 36%, 만 55세~64세 34.5%)를 신뢰하지 않는 태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가요계에선 이로 인해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과 실시간 차트 폐지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의 음원차트는 마트의 매대와 같다. 소비자들의 손이 닿기 쉽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된 상품이 더 많은 선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가요계 관계자 A씨는 “대중에게 노출이 잘 될수록 음원을 클릭하는 확률이 높아진다”며 “그게 바로 현재의 실시간 차트이고, 이로 인해 소위 말하는 실시간 순위 톱100이 성공의 자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분 단위로 바뀌는 음원 순위로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음원 사재기 폐해까지 가져온 실시간 차트는 폐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