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통사람 눈에 비친 ‘격동 2018’

평창 단일팀 입장땐 가슴벅차…남북정상 손잡을땐 기립 박수 치솟는 집값에 결혼 포기하고…미투운동 확산 사회변화 실감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에 울분…직장불안·물가답답 ‘공통분모’

‘多事多難.’ 어째 이 말은 매년 들어맞는 것 같은지…. 올해도 어김없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3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치르면서 평화 국면을 맞았다.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얼룩진 그간 한반도 정세에선 상상 못할 일이었다. 미투(Me 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각계의 치부가 드러났다. 쌍둥이의 퇴학을 부른 숙명여고 내신 비리 사건은 수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분노케 했다. 적폐청산, 방탄소년단(BTS)의 국위선양 등 환영할 만한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했다. 집 값은 폭등하고 일자리는 씨가 말랐다. 가계 빚은 기하급수로 불어나고 생필품ㆍ대중교통 등 물가는 들썩였다.

온 몸으로 겪었다.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울분을 토하기도 한 시기였다. 대한민국 보통사람, 30대 남녀를 만나 ‘격동의 2018’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화는 감동, 집 값은 좌절…30대 직장男의 희비=서울 중구에 사는 직장인 유정현(39) 씨는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만든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어린 아들 2명과 경기장에서 느낀 짜릿함은 생생하다. 연신 ‘영미’를 외친 ‘팀 킴’의 가슴 뻥 뚫리는 컬링 드라마는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 유 씨는 “경기장 앞 길게 늘어진 줄을 본 막내가 우리나라도 이렇게 큰 행사를 하느냐고 물을 때 뿌듯했다’며 “흥행은 물론 귀여웠던 수호랑, 반다비 등 마스코트까지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TV를 통해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 팀을 마주할 땐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을 느꼈다. 북한 선수들도 우리 말을 하는 평범한 청년이란 생각을 한 순간이다. 유 씨는 “태어날 때부터 총칼을 겨눠야 할 이들이 한 팀이 된 장면에서 감동과 서글픔을 함께 느낀 것 같다”며 “남북이 한 목표를 향해 뛰는 것을 보며 영화 속에 빠져든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북간에 조성된 평화무드는 올해 유씨의 가슴을 뛰게한 사건이었다.

특히 지난 4월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손을 맞잡는 장면에선 전율을 느꼈다. 유 씨는 “출장 일정이 있어 서울역의 대형 TV로 봤는데, 주변 사람 모두 기립 박수를 쳤다”며 “사연 있는 분들은 평생 바란 장면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아내는 직장 TV, 아들들은 학교 TV를 통해 두 사람의 만남을 생생히 봤다고 연락했다”며 “온 가족이 평화의 필요성을 체감하는 계기가 돼 더욱 뜻깊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유 씨에게 감동뿐인 순간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도 술을 마시면서 아내에게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지난 9월 어느 주말 저녁식사 자리였다.

유 씨의 집은 방이 3개 있는 2억5000만원짜리 전세다. 맞벌이로 돈을 바짝 모은 후 올 연말이나 내년 초 광진구나 서대문구에 봐 둔 아파트를 살 생각이었다. 문제는 올 초부터 집 값이 급등했다는 점이다. 정부나 서울시가 내놓는 정책 대부분이 가격 상승을 자극할 때다. 그는 “목표로 한 집 값이 하루 아침에 수백만원씩 오르는 걸 보니 앞 길이 막막했다”며 “차라리 적금을 다 깨고 투기나 할까하는 생각도 굴뚝 같았다”고 토로했다. 유 씨는 집 값이 안정 추세에 접어들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내년에는 부동산만 잘 잡아도 정부에게 합격점을 주겠다”고 했다.

▶미투는 통쾌, 직장ㆍ물가는 불안…30대 직장女의 희비=부산 서구에 사는 직장인 박모(37ㆍ여) 씨는 올 초부터 미투 운동이 불 붙는 모습을 끝까지 챙겨봤다. 1월 서지현 검사가 성추행 실상을 고발하며 이슈가 된 미투 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끝까지 부인하던 이들이 잘못을 시인하는 순간 통쾌함이 가득했다.

박 씨는 “온갖 부당한 일을 당한 약자들이 더는 참지 않고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며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느낄 수 있던 모습”이라고 했다.

사실 그도 한 때는 약자 입장에서 수모를 겪었다. 박 씨는 2000년 초 첫 회사에 입사했을 무렵 상사에게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어라’, ‘검은색 스타킹을 신으라’는 등 언어적 성희롱에 시달렸다. 한 상사는 손을 자기 엉덩이에 대며 ‘이 정도면 쓸만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땐 이런 일이 일상으로, 수치심에 복사실에서 많이 울었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어 퇴사했다”며 “이번 일이 강자에게 조아리는 풍토가 사라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의 딸은 곧 초등학교 4학년생이 된다. 쌍둥이 딸에게 시험문제ㆍ정답을 알린 의혹으로 주목받은 7월 숙명여고 사건은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경찰과 검찰의 조사 끝에 모두 시험 전 유출이 있었다는 판단이내려졌고 쌍둥이 딸은 퇴학 처리됐다. 그는 “만약 내 딸이 그런 피해를 봤다면 참지 못했을 것 같다”며 “가훈이 ‘정직’인데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진실되게 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씨는 또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자기 아들이 3학년생이 되자 교무부장을 맡는 교사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번 기회에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정의구현이 있다는 데 흐뭇하지만, 그에게도 고민거리는 많다. 무엇보다 불안정한 직장과 점점 얇아지는 지갑 사정이 걱정이다.

그는 현재 출판사에세 계약직으로 근무중이다. 임신으로 인한 경력단절 이후 정규직이 되어 본적은 없다. 지금의 일도 지난해 초 이력서를 30여장을 보낸 끝에 겨우 얻었다. 경기가 어려워져 채용 규모를 대폭 줄인다는 사내 메일 최근 받은 이후 불안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박 씨는 “임금 상승 속도보다 장바구니 물가 상승 속도가 더 빠르다”며 “식비를 줄일지 의류비를 절약할지 심각히 고민중”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한숨을 내쉰 후 이내 미소를 보였다. 박 씨는 “삶은 팍팍하지만 언젠가 볕들 날이 있을 것”이라며 “위기일 때 빛나는 국민 특유의 성실 유전자가 변화를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원율 기자/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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