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거론품목 주력 식품업체 고민 깊어져 연구개발·생산시설 투자 없인 성장 불투명 김치종주국 불구 수출보다 수입 많은 실정 국내 농가 수입 감소 등 부작용 우려 증폭 “글로벌 경쟁 심화 속 국내기업 역차별” 지적
“한식 세계화, 세계화 외치면서 기업들 투자를 못하게 하다뇨. 시대에 역행하는 거죠.”(A 식품기업 관계자)
한류 열풍을 돛 삼아 쾌속 순항하던 식품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소상공인 생계와 밀접한 업종에 대해 대ㆍ중견기업의 사업 확장을 막는 내용의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시행이 2주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연구개발(R&D)과 설비 확대 등 투자에 제약이 따르면서, ‘한식 세계화’ 행보에도 제동이 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13일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대상으로 거론되는 업종과 품목에 주력하는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앞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됐던 73개 업종ㆍ품목이 우선 선정될 전망이다. 이 중 40%가 김치, 장류, 두부 등 식품 분야로, 해당 업계의 고민은 더 깊어져가고 있다. 지정된 업종과 품목에 대해 대ㆍ중견기업은 5년간 사업 인수와 개시, 확장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식 대표 주자인 ‘김치’가 생계형 적합업종 대상에 오르면서 김치산업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1인가구ㆍ맞벌이 가구 증가로 국내 포장김치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수출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이 가운데 중국산 김치가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는 형편이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최근 몇년간 국내산 김치 수출량은 2014년 2만4742톤, 2015년 2만3111톤, 2016년 2만3490톤, 2017년 2만4311톤 등으로 큰 성장세가 없었다. 반면 수입물량은 지난해 27만5631톤으로 2014년 21만2938톤에 비해 약 29% 급증했다. 수입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산 김치는 국내 김치 유통량의 30% 수준에 달한다. 업소용 김치는 약 80%가 중국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국산김치 입지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본력을 보유한 대기업이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제품 경쟁력을 높여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CJ제일제당 등 대형 제조사 입장이다.
김치 품질 개선과 세계화를 위해선 발효미생물 종균 개발 등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량 생산이 가능한 설비는 물론 냉장 유통망 등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필수적이다. 대기업은 이미 연구기반과 생산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영세 소상공인이 이같은 투자에 나서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보니 품질 개선은 고사하고 맛을 균등하게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현재 김치 세계화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들쭉날쭉한 제품 맛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일본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불만사항으로 맛 편차가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김치산업 선진화와 한식 세계화를 위해선 적극적 연구개발 투여와 유통품질 안정화, 철저한 위생 관리, 포장형태 다변화 등으로 상품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가정간편식(HMR) 등 김치를 접목한 가공품을 확대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새로운 시장을 열어가는 것도 대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오히려 국내 농가의 소득 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치를 생산하는 대기업은 원재료를 대부분 국내 농가와의 계약 재배를 통해 조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농가들은 들쭉날쭉한 작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이같은 상생 관계는 제조사가 사업을 확장해가며 시장 파이를 키워야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두부가 2011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자 대기업의 국산 콩 사용량이 감소하면서 콩 재배 농가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사례가 하나의 교훈이라는 것이다.
김치 뿐 아니라 장류나 두부 등 다른 품목에 주력하는 제조사의 우려도 마찬가지다. K푸드로 꼽히는 한식 제품을 주력 생산하는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국내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세계시장을 겨냥해 연구개발도 하고 설비투자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제약이 생기다보니 업체 입장에선 성장 길이 막힌 셈”이라고 했다.
다만 일부 업체는 자사 주력업종이 생계형 적합업종에 포함될지 여부가 확정적이지 않고, 지정되더라도 해제될 여지가 있다며 다소 낙관적인 반응을 보였다.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제7조 제6항은 시장의 현저한 변화 등으로 인해 지정 해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5년이 경과하지 않았더라도 지정을 해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제8조제2항은 소비자 후생 및 관련 산업에의 영향을 고려해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대기업 등이 생계형 적합업종 사업을 인수ㆍ개시 또는 확장할 수 있도록 승인할 수 있다고 여지를 뒀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시장에서 우리만 칸막이를 만들어 특정 분야에 대기업 진출을 막는 건 국내 기업에 역차별이 될 수 있다”며 “농식품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영세기업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다른 지원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이혜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