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낼 시기 지났다는 국가 주장은 잘못’ 결론 -대법원 판결 지적하면서도 ‘법이 잘못됐다’ 선언 -헌재 논리 대법원 인정여부 따라 구제범위 달라질 수도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과거사 피해자들이 배상범위를 좁게 해석한 대법원 판결을 들고 헌법소송을 냈지만, 당초 우려됐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사이의 ‘정면충돌’은 없었다.

헌재는 30일 총 105건의 과거사 관련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심판 사건을 선고했다. 헌법소원은 과거사 피해자가 직접, 위헌법률심판은 법원이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제청하는 사건이다.

사건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피해자들이 추가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시기가 지났는지, 그리고 국가 배상 범위를 좁힌 대법원 판결을 헌재가 취소할 수 있는지 등이다.

이날 헌재는 보상금을 받은 피해자들도 ‘정신적 피해’에 관해서는 추가로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판결했다. 또 가해자인 국가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결론냈다. 다만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법원의 재판은 헌재에 ‘취소해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 헌재는 ‘위헌인 법률이 적용된 재판이 아닌 이상 취소할 수 없다’는 기존 논리를 유지했다.

헌재가 이같은 결론을 낸 것은 사실상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2013년 대법원은 과거사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 국가배상청구권은 형사 판결 확정일부터 6개월이 지나면 소멸한다고 판결했다. 국가가 잘못을 저질렀어도 ‘소송을 낼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예전에도 헌재가 ‘대법원의 법 해석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 대법원은 ‘헌재에게 그런 판단을 할 권한이 없다’는 논리로 다툼을 벌이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헌재는 이번 사건에서 결론인 ‘주문’을 틀어 대법원과의 충돌을 피했다. ‘법 해석이 잘못됐다’는 한정위헌 결정이 아니라 ‘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정위헌이란 ‘법률을 이렇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주문을 말한다. 대법원은 법률해석권은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의 결론을 효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 선고를 끝으로 임기가 끝나는 ‘5기’ 헌법재판관들은 굳이 한정위헌 결정으로 대법원과의 다툼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헌재의 이러한 의도를 대법원이 그대로 받아줄 지는 미지수다. 최근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지만, 일선 법원에서는 유죄 판결이 나오고 있다.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하면서도 처벌 규정을 그대로 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과거사 사건에서도 대법원이 헌재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헌법소원을 낸 피해자들이 ‘헌재 논리대로 판결해달라’고 재심을 요구하더라도 대법원이 ‘헌재 결론은 사실상 한정위헌을 한 것이고, 법적 근거가 없는 결론을 냈다’고 판결하면 구제받을 길이 막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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