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 태풍 ‘솔릭’이 지나갔다. 다행스럽게 한반도에 최악의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태풍 자체 세력 약화도 있었지만 태풍이 상륙하기 전 정부와 국민이 태풍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비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지난달 제약업계에도 ‘하나의 태풍’이 몰려왔다. 진원지는 ‘중국’이었다. 중국산 원료의약품이 한국을 덮친 것이다. 지난달 중국 ‘제지앙화하이’사에서 만든 고혈압 치료제 원료의약품 발사르탄에서 ‘NDMA’라는 2군 발암물질이 검출되자 국내 600만 고혈압 환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해당 원료의약품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된 115개 제품이 1차로 판매중지 됐다. 식약처는 부랴부랴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발사르탄 의약품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섰고 2차 조사에서는 추가로 59개 품목이 판매중지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23일 추가로 2개 제품이 검출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오면서 판매중지된 발사르탄 고혈압약은 총 175개 제품으로 늘어났다.
국내에서 이렇게 문제가 된 의약품을 처방받은 환자 수는 1차 조사에서 18만명, 2차 조사에서 18만명 등 36만명 이상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병의원과 약국을 방문해 처방받은 약을 다른 약으로 바꾸자 ‘약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해당 의약품이 아닌 다른 약을 복용하던 고혈압 환자들도 불안감을 가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한 의약품 제조소의 실수가 한국 사회를 ‘발암물질 고혈압약’ 공포에 빠뜨린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제약업계가 입게 될 피해액은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앞으로 올해 중국발 태풍이 또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난 18일부터 ‘나고야의정서’ 비준국으로 본격 시행 대상국이 됐다. 이에 해외 유전자원을 이용해 상품 등을 개발해 이익을 얻을 경우 유전자원 이용자는 유전자원을 제공한 국가(기관)와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즉 한국이 해외에서 들여온 자원으로 의약품을 개발해 이익이 나면 자원을 들여온 나라에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나고야의정서 발효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분야로는 제약산업이 꼽힌다. 실제 국내에서 생산되는 위염 치료제 ‘스티렌’, 골관절염 치료제 ‘신바로’ 등 천연물의약품은 원료를 모두 해외에서 들여와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앞으로 이익금의 일부를 원료를 들여 온 국가에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용하는 유전자원의 절반은 중국산 원료다. 제약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원료의 양도 풍부하고 비용이 국내산이나 유럽산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중국산을 쓰지 않기가 어렵다”고 했다.
우리가 중국에 지불해야 할 이용 금액이 얼마나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환경부는 제약쪽이 부담할 금액이 연 600억~700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은 한국 제약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중국산=짝퉁’ 또는 ‘중국산=낮은 품질’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중국산에 대한 ‘푸념’보단 ‘관리’다. 의약품 뿐만 아니라 우리가 쓰는 많은 물건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를 거둬내는건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더구나 중국산은 과거 짝퉁의 이미지를 벗고 싸면서도 품질 좋은 ‘가성비 갑(甲)’의 환골탈태를 하고 있다. 오죽하면 ‘대륙의 실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국가다. 미국과 관세폭탄으로 ‘맞짱’을 뜰 만큼 덩치가 커졌다. 미국 눈치를 보는 한국보다 영향력이 높아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발사르탄 사태나 나고야 의정서 발효로 인해 한국은 중국이라는 태풍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태풍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이제라도 대비에 나서야 한다. 솔릭은 자연스럽게 영향력이 약해졌지만 중국발 태풍은 그럴 가능성이 적다. 중국산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지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