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가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국민들에게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특정 이슈에 대해 청원을 올려 줄 것을 요청했는데, 어느샌가 김 위원장 본인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지지청원으로 바뀌어 답변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해 ‘오해’부터 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오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현 내각에서 김 위원장만큼 폭넓은 지지를 받는 부처수장은 찾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취임 이후 쏟아낸 대기업 개혁, 가맹ㆍ유통ㆍ하도급 분야의 갑질 근절, 영세자영업자ㆍ골목상권 보호 등 각종 정책은 김 위원장에게 ‘갓상조’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김상조가 나이를 먹더니 말랑말랑해진 것 아니냐”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자신도 굳이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의 최선봉에 서는 공정당국의 최고책임자로서 지난 10개월간의 경험칙을 통해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역시 국민 삶의 변화와 직결될 수 있도록 접근방식을 바꿔야 하며, 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지난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우리 경제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불공정의 낡은 경제질서를 하루 아침에 뜯어고칠 수는 없다”며 “취임 이전 강력하고 신속한 구조개혁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재벌은 개혁의 대상”이라는 소신은 분명히 하면서도 동시에 재벌이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며, 대기업들의 생산력을 무너뜨리는 방식의 마이너스식 개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대주주와 CEO가 늦지않게 적절한 타이밍에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는 만들어가는 것이 재벌개혁의 목표”라며 지향점을 밝혔다.
실제로 이같은 김 위원장의 개혁 방향에 대기업들도 호응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대차그룹이 순환출자 개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내놓는가 하면, 삼성ㆍSKㆍ한화 등도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수일가 부당 지원, 공익재단ㆍ계열분리 등을 이용한 편법 지배력 강화 등 수십년간 고착화됐던 대기업들의 폐습들이 이른바 ‘김상조 효과’를 통해 하나둘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에 폭주하는 사건ㆍ민원과 중앙권력에 문제 해결을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감에 대한 부담감도 숨기지 않은 김 위원장은 청원 답변 말미에 ‘절박’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현 정부마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실패하면 우리 자식들의 미래는 보장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는 그의 속내에서 더 단단하면서도 합리적인, 그리고 예측가능한 개혁방향이 읽힌다.
유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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