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억원이나 들었는데…‘공정성의 함정’에 빠진 세종청사 미술품

“글쎄요.. 임옥상 작가를 제외하고는 이 금액을 주고 작품을 구매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국내 굴지의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한 갤러리스트는 기자가 전해준 리스트를 보고 이같이 말했다. 리스트에는 세종청사에서 구매한 미술품의 가격, 작가이름이 함께 기재돼 있었다.

정양석 의원(바른정당ㆍ서울 강북구갑)에 따르면, 세종청사가 개청하며 구매한 작품은 총 30건(프로젝트는 1건 계산), 약 70억 7800만원에 달한다. 건축 비용의 일정규모를 의무적으로 회화ㆍ조각ㆍ공예등 미술작품을 구매하는데 사용해야하는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른 것으로 국내 단일 건축물로는 최대규모다.

리스트를 살펴보면서 크게 두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하나는 가격적인 부분, 다른 하나는 작가에 대한 것이었다.

가장 가격이 낮은 작품이 9476만원으로 1억원에 가깝다. 대부분 1억~2억5000만원이고, 프로젝트성 작품 2건은 각각 약 13억원과 11억원 가량을 지불했다.

현대미술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작품가는 구매자와 판매자만 있으면 결정된다고 하지만 미술작품도 엄연히 거래되는 시장이 있다. 소위 싯가가 존재한다.

사진 세종청사 미술품
라이프스타일섹션 기자

또한 일반인들의 짐작과 달리 작품당 1억원을 넘기는 미술작품은 흔치 않다. 물론 작품 크기나 재료, 기법에 영향을 많이 받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점당 1억원을 넘기는 경우는 작고 작가를 제외하고는 30명 내외로 시장에서는 보고 있다. 물론 평면예술이 아닌 조각과 설치작품은 그 스케일이 다르다.

그러나 전시장 안에 들어오는 조각이나 설치작품은 오히려 가격대가 더 낮은 경우도 상당하다.

세종청사에 작품을 들이기 시작한 건 2012년부터 2014년까지로, 이명박 정부 말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서슬이 시퍼럴 시기에 대표적 블랙리스트 미술가로 꼽히는 임옥상 작가가 이름을 올린 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어떻게 이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유는 바로 ‘공모’에 있었다. 행복청은 미술작품이 들어갈 장소를 지정한 뒤, 이를 공모에 부쳤다. 총 3차례에 걸쳐 공모를 받았고, 각각 복수의 심사를 거쳐 작품을 선정했다. 심지어 마땅한 작품이 없을 경우엔 재공모까지 했다. 심사위원만 80여명, 심사만 17차례 시행했다.

심사에 참여했던 한 심사위원은 “이보다 더 공정하게 평가할 순 없었다”고 말했다. 들어온 작품제안서에 작가명을 가리고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1차 심사를 한 뒤, 이를 통과해 올라간 2차 심사에선 학연과 지연을 배제하기 위해 작가와 심사위원을 크로스체크, 학교나 출신지역이 겹치면 심사위원을 교체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특별상을 수상했던 설치미술가 전수천도 탈락했다. 심사위원 구성도 다양하다. 미대 교수, 건축 교수, 지역신문 기자, 미술관 큐레이터 등 전문가와 일반인의 시선을 대신할 수 있는 위원들을 선정했다.

이렇게 ‘공정한’ 방식으로 선정한 작품은 결과적으로 작품성 논란을 낳았다. 해당 심사위원은 “무척이나 공정하게 뽑았지만, 일부 작품은 과연 나라를 대표하는 종합청사에 어울리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공정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현대미술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무시한 결과가 나왔다는 지적이다. 개인마다 각각의 미감은 다르고, 이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순 없지만 정부종합청사에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 작가의 작품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건 뼈아픈 지점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공모’로 미술품을 선정하는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정부사업에 공모를 하려면 이를 꾸준히 지켜봐야 하는데, 그냥 작업만 하는 작가들은 놓치기 십상이다. 소속 에이전시나 회사가 있는 작가들만이 지원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조각의 경우는 개인 지원으론 한계가 있고 건축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야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공정성의 함정’에 빠져 특정분야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무시한 결과는 국민의 몫이 됐다. 동네 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작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민의 세금으로 거금을 들여 설치한 작품이라면 그에 걸맞는 미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시비가 일까봐 몸사리는 미술정책 때문에 잃는 게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