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은 급변하는데 그 시장의 대표를 뽑는 작업은 마치 고인 물과 같다.’ 자본시장의 상징인 한국거래소가 새 이사장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벌써부터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관료 출신 뿐아니라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몸담은 인사들까지 하마평에 오르며, 해묵은 ‘낙하산 인사’ 논란에 또 다시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래소 이사장 자리는 친정부 인사들이 차지해 왔던게 사실이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료 출신인사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잇따라 선임되면서, 거래소의 경쟁력은 갈수록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거래소 안팎에서는 내부 출신을 기대하지만 외부 출신의 기용 가능성도 적지 않다. 최근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OB출신을 챙겨주고 싶지만 캠프 출신의 유력후보가 등장하면서 좌불안석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당국 고위 관료들이 대거 대기하고 있는데다 정권 초기에는 외부출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외부 출신 신임 이사장 후보로는 정은보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유력 거론되며 문재인 캠프 출신인 김성진 전 조달청장도 팽팽하다. 이외에도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 이철환 전 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또 김기식, 홍종학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정치인들도 오르내린다. 내부 출신으로 김재준 코스닥시장 본부장, 최홍식 전 거래소 코스닥 본부장이 하마평에 올랐다.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면서 조직은 활기를 잃었다. 시장의 핵심 기능인 효율성과 자율성이 약해졌고, 자본시장 육성정책과 투자 유인책은 실종된지 오래다. 한국거래소의 해묵은 과제인 지주회사 전환은 추진력을 잃은 상황이고, 글로벌 거래소들과 비교해 조직 경쟁력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내 증시가 6년만에 박스권에서 탈출했고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코스피 3000 고지를 갈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현재 투자 심리는 한풀 꺾였다. 국내 주식시장 이 무려 60년을 지나면서 투자자 눈높이는 높아졌지만 시장의 여건이 글로벌 환경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은 여전하다.

그러다 보니 이번 만큼은 전문성이 있는 인사가 와야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높다. 무엇보다 이사장은 정부 입김이 아닌 시장 논리에 따른 주주들의 자율적인 의사로 뽑아야 한다. 거래소의 주요 주주는 증권사들이다. 80% 이상의 거래소 지분은 증권회사가 갖고 있다. KB증권이 최대주주이고 정부 지분은 하나도 없는 엄연한 민간 회사다. 그럼에도 정부 입김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거래소가 한때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거래소는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이사장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후보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5명,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대표 각 1명, 금융투자협회 추천 2명으로 구성된다.

신임 이사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지난 정부에서 무산됐던 거래소의 지주사 전환 재추진 문제 등 굵직한 현안을 추진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글로벌 유수 거래소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시급하다. 아울러 최근 셀트리온의 코스피 이전상장 문제로 생긴 거래소 내부 조직 간 갈등 문제에 대한 수습책도 당면 과제로 꼽힌다.

특히 거래소의 숙원인 지주사 전환과 상장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는 신임 이사장이 시급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파생상품시장 등을 개별 자회사 형태로 분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장에선 거래소의 구조 개편이 이뤄질 경우 글로벌 인수합병(M&A)과 지분 교환, 교차 상장 등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 보다 쉽게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 투명한 시장환경 조성과 투자자보호 조치도 필요하다.

유능하고 전문성을 갖춘 이사장 선임을 위해 이사후보추천 위원들이 이번 만큼은 ‘거수기’가 아닌 소신있는 한 표를 행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재인 정부도 낙하산, 보은인사 등을 배제해 적폐를 청산하고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거래소 이사장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이야 말로 자본시장의 오래된 적폐 청산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