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문재인 정부가 부자증세의 칼을 빼들었다. 늘어나는 일자리 및 복지관련 재정수요에 대응해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에 대한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고 과표를 조정해 연간 5조5000억원 규모의 세수를 확충할 방침이다.
반면 일자리를 창출하거나 임금을 인상하는 기업 또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 등 일자리의 질을 개선한 기업에는 세제혜택을 확대하는 등 현행 조세지원 제도를 일자리 중심으로 전면 재편키로 했다. 또 저소득층에 대한 근로장려금을 확대하고 월세 세액공제를 늘리는 등 서민층의 부담을 축소함으로써 세금을 통한 소득재분배 및 양극화 완화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는 2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2017년 세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이번 개정안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다음달 1일 국회에 제출되며,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내년부터 적용된다.
하지만 야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증세방침에 반대하며 담뱃세 재인하 등 맞불을 놓고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더욱이 증세는 국민들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야권에서 이를 정치 쟁점화할 가능성이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번 세법개정으로 서민ㆍ중산층과 중소기업의 세부담은 연간 8167억원 줄어드는 반면 고소득자ㆍ대기업의 세부담은 6조2683억원 늘어나 전체적으로 5조4651억원의 세수증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소득자와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고 서민과 중소기업의 세부담을 줄이는 한편, 취약계층 지원을 확대해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달라지는 세법을 보면 먼저 법인세의 경우 최고 과표구간이 신설되고 최고세율이 인상된다. 현재는 과표기준 2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에 22%의 최고세율이 적용됐으나, 내년부터는 200억~2000억원 이하 기업엔 종전과 동일하게 22%의 세율이 적용되지만 2000억원 초과 기업에는 25%의 새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것이다. 과표 200억원 이하엔 현행 10~20% 세율이 그대로 적용된다.
25%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2000억원 초과기업은 지난해 신고기준 129개로, 세수 증가규모는 2조5500억원으로 추산된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25%로 인상되는 것은 이명박(MB) 정부가 출범 직후인 2009년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한 이후 10년만이다. 정부는 이번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이 MB 정부 이전 수준으로의 ‘환원’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2009년 이전에는 과표 2억원 초과 기업에 25%의 최고세율이 적용됐으나, 이번 개정안에선 과표기준이 2000억원으로 대폭 높아진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다.
소득세의 경우도 과표구간이 조정되고 최고세율이 인상된다. 현재는 과표기준 1억5000만~5억원에 38%, 5억원 초과에 40%의 세율이 적용됐으나, 앞으로는 과표구간 1억5000만~3억원에는 종전처럼 38% 세율이 적용되지만 3억~5억원은 40%로 2%포인트 올라가고, 5억원 초과에는 42%의 새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과표구간 1억5000만원 이하엔 현행 6~35% 세율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소득세 과표가 3억원을 넘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사람은 모두 9만3000명으로 대상자의 1% 미만으로 추정된다. 과표 3억원 이상자는 근로소득자의 경우 2만명으로 상위 0.1%, 종합소득세 신고대상자의 경우 4만4000명으로 상위 0.8%, 양도소득세 대상자의 경우 2만9000명으로 상위 2.7%가 해당된다. 소득세 최고세율 조정으로 인한 세수 증대효과는 1조800억원 규모로 추정됐다.
대주주의 주식 양도소득세도 규모에 따라 과세가 강화된다. 현재는 과표에 상관없이 20%의 단일세율이 적용됐으나, 앞으로는 과표기준 3억원 이하에는 20%의 종전세율이 적용되지만 3억원을 초과하는 경우엔 5%포인트 높은 25%의 세율이 적용된다.
또 상속ㆍ증여세를 신고할 경우 세금을 줄여주는 신고세액공제가 현행 7%에서 내년에 5%, 2019년 이후 3%로 단계적으로 축소되고, 10년 이상 장수한 중소ㆍ중견기업에 대한 상속세 공제기준이 강화되는 등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제도가 대폭 강화된다.
반면에 신규로 고용을 창출한 기업의 세금을 고용인원 1인당 300만~1000만원 공제해주는 고용증대세제가 신설된다. 또 직전 3년 평균 임금증가율을 초과하는 임금증가분의 일정비율을 공제해주는 근로소득증대세제가 중소기업 중심으로 강화된다. 종전에는 대기업에 5%, 중소ㆍ중견기업에 10%의 세액공제가 적용됐으나 내년부턴 대기업 5%, 중견기업 10%, 중소기업 20%로 바뀐다.
이외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규모가 현행 1인당 7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늘어나고, 중소기업 취업근로자에 대한 세제지원 기간이 취업후 3년간에서 5년간으로 늘어나는 등 일자리 질 개선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다.
저소득ㆍ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일을 통한 빈곤탈출을 돕기 위해 저소득가구에 지원되는 근로장려금이 현행 77만~230만원에서 85만~250만원으로 10% 안팎 상향조정되며, 주거안정을 위한 월세 세액공제율이 현행 10%에서 12%로 확대된다.
김 부총리는 “저성장ㆍ양극화 극복을 위한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재정의 적극적ㆍ선도적 역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안정적인 세입기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그동안 비과세ㆍ감면 정비를 통해서도 세입확충 노력을 해왔지만 보다 근본적인 세입기반 확충을 위해선 세율조정이 필요하다”고 증세 배경을 말했다. 그는 다만 “경제여건과 과세형평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소득계층과 일부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율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사회 취약계층과 영세기업 지원에 활용하면 사회통합과 상생협력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