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손석희 JTBC 사장 겸 앵커가 지난 25일 취임 임명장을 수여하는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한시를 읊은 것에 대해 “처음 보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손 앵커는 이날 JTBC 뉴스룸 ‘비하인드뉴스’ 코너를 진행하면서 문무일 검찰총장이 임명장 수여 자리에서 한시를 읊었다는 취재기자의 언급이 나오자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 첫 날 대통령 앞에서 전례 없는 행태를 보인 데 대해 황당함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이날 오후 2시30분 문재인 대통령은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으셨다”고 인사말을 건네자, 문 총장은 “바르게 잘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제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로부터 각기 다른 많은 주문을 받아서 한시가 생각이 났다”며 한시를 읊기 시작했다.
문 총장은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 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 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며 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하늘을 바라네”라고 읊었다.
대만 학자인 난화이진(南懷瑾, 1918∼2012) 선생이 자신의 저작인 ‘논어별재(論語別裁)’에 실은 한시였다.
문 총장은 “예전 선배가 가르쳐준 시인데 이번 청문회를 거치며 생각났다”고 말했다. 문 총장이 언급한 선배는 앞서 검찰총장을 역임한 김진태씨로 추정된다.
지난 2014년 3월 당시 김진태 검찰총장은 대검찰청 간부회의에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의혹 사건이 논란이 되자 이 시를 읊은 적이 있다.
신임 검찰총장이 취임 첫 날 대통령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한시를 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수적인 검찰 내부 정서를 감안할 때 상당히 파격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문 총장이 취임 일성으로 문 대통령을 향해 항명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풀이마저 나온다. 대통령 앞에서 전례 없는 한시 읊기에 나선 신임 검찰총장의 행동 그 자체가 대통령에 대한 무시 아니냐는 것이다. 이날 문 총장은 팔을 쭉 뻗어 악수를 청하는 대통령을 향해 팔을 굽힌 채 손을 내밀어 이상 기류를 시사하기도 했다.
실제로 문무일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고강도 검찰개혁을 주문하는 의원들과 결을 달리하는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검찰이 자체 비리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수사를 마치고도 의혹이 남는다면 점검하는 절차를 만들 생각”이라며 “외부 전문가, 법조 원로를 위촉해 수사기록과 수사과정을 점검하는 방식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에 영장 청구권을 주는 방안과 관련해서는 “한국 영장제도는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관행이 남아 있다. 이를 어느 정도 정리할 필요는 있으나 한 가지로 정리해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며 찬성하지 않았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문제에도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찾을 수 있다”며 “공수처 논의와 별개로 저희가 먼저 바뀔 모습을 보여드려야 생각한다.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이런 문 총장의 대응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검찰 개혁을 이끌 적임자가 과연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인사청문회 전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가 검경 수사권 조정방안에 반대입장을 드러낸 것에 대해 비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낸 적이 있는 박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 ‘검찰총장 후보자의 검찰개혁 의지를 묻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검찰개혁, 재벌개혁의 핵심은 권력과 돈의 집중현상을 어떻게 견제와 균형을 갖게하느냐와 투명성이다”라며 “브레이크없는 검찰권력에 견제와 집중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 후보자가) 검찰총장 후보자가 수사와 기소가 분리 불가능하다고 한 점은 검찰개혁 의지가 없다는 자기고백”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 21일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는 24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안건에 대해 “판사가 재판하지 않고 판결을 선고할 수 없듯이 검사가 수사하지 않고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해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혔다.
문 후보자의 반대 입장은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국정과제 방침과도 어긋난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19일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 기소권을 갖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와 더불어 ‘재판은 법원이, 기소는 검찰이, 수사는 경찰이’ 맡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법령 정비를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문무일 검찰총장의 ‘한시 읊기’ 돌발 행동 이후에 문 총장에게 다시 한번 강력한 검찰 개혁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가 크다”고 운을 뗀 뒤 “국민이 검찰의 대변화를 바라는데 그것은 검찰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국민께 신뢰받는 기관이 되길 바라는 애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만큼 사회정의 중추인 검찰에 대한 기대가 큰 걸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검찰도 그동안 한편으로는 노력을 많이 하면서도 정치적 측면에서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준 부분도 있었고 그래서 불신이 생기고 그에 대한 근본적 변화 요구가 생기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변호인으로서 겪은 검찰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저서를 통해 남긴 바 있다.
아울러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문 총장에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노력을 강력히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 스스로 정치적 중립성을 확실히 확보해야 한다”며 “정치도 검찰을 활용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하지만 검찰 스스로 중립의지를 확실히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정치에 줄 대기를 통해 혜택을 누려온 일부 정치검찰의 모습이 있다면 통렬히 반성해야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묵묵히 업무에 임해온 검사들도 더 큰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이것이 총장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