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지금 재외공관과 본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과 (성추문) 발생빈도를 보면 너무나 명확하지 않는가? 누가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런 일이 덜 벌어지는 것이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인간의 본성이니까 벌어지는 것. 외교부 본부에서 그런일이 벌어진다는 얘기는 못들어보지 않았는가.”
외교부 당국자는 12일 에티오피아 주재 고위 외교관이 여성 행정직원을 성폭행한 혐의와 관련해 얘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사건진상 조사과정에서 ‘감사인력이 확충되면 공관에서 성추문 관련 사고발생률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가’는 기자단의 질문에 답한 것이었다.
이날 외교부 당국자는 에티오피아 주재 대사관 여성 행정직원 B 씨가 고위 외교관 A씨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B 씨 진술에 따르면 A 씨는 토요일인 사건 당일 저녁 와인 3병을 곁들여 B 씨와 둘이서 식사한 뒤 만취해 의식을 잃은 B 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이튿날 새벽에 깨어나 상담 기관의 조언에 따라 병원 진단서를 받은 뒤 모친과 주변인들에게 피해사실을 알렸다. B 씨는 사건 다음날 귀국길에 올랐고, 모친이 외교부 영사콜센터에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피해자 진술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고 A씨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발부한 상태다. 이에 따라 A씨는 12일 저녁 귀국한 뒤 13일부터 외교부 감사관실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외교부 감사관실은 제3의 장소에서 피해자 면담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A 씨와 B 씨의 진술이 다른 상황이다.
외교부는 무관용 원칙 하에 혐의자의 행위가 확인되면 형사처벌, 중징계 등 엄중조치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성추문의 문제를 ‘인간의 본성’으로 규정한 외교부 당국자의 발언은 성추문이 끊이지 않는 외교부의 민낯을 드러낸다.
외교관이 성추문 사건에 연루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성추문으로 징계를 받은 재외공관원은 5명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칠레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공공외교를 담당했던 참사관급 외교관이 14살 안팎의 현지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가 현지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논란이 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공개한 2012~2016년 외교부 징계현황에 따르면 외교부 본부와 재외공관에서 징계가 내려진 비위행위 36건 중 11건은 성추문과 관련됐다.
성추문이 잇따라 발생하자 외교부는 대응책 마련차원에서 부내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외부전문가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유사 사건 재발을 막지 못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전 세계 흩어진 외교관들의 근무기강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진행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영사인력 등을 확충해 사건 사전예방과 초동대응을 적기에 할 수 있도록조직혁신TF에서 다루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감사인력과 재외공관 근무여부에 따라 성추문 관련 사고발생률이 떨어진다는 당국자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관업무가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업무강도와 고단함, 그리고 감사강도에 따라 성추문 관련 사고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외교부 관계자는 “(당국자의 발언이) 잘못된 것”이라며 “감시의 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들여봐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 후 조직ㆍ인사 혁신 차원에서 공직 기강 확립에 방점을 두고 있음에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한 데 대해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아울러 철저하고 신속한 조사를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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