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담당 검사들은 배상 책임 없어…국가와 필적감정인 책임만 인정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강기훈(65) 씨와 가족들이 국가로부터 6억 8600여만 원 배상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부장 김춘호)는 6일 강 씨와 가족들이 국가와 사건에 연루된 김형영 당시 국과수 필적감정인, 강신욱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신상규 당시 주임검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와 김형영 당시 국과수 필적 감정인이 강 씨에게 7억 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피의사실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강 씨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고 석방된 후에도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강 씨는 지난 2015년 8월 지급받은 형사보상금 액수를 제외한 5억 2937만 원을 실제 배상받게 된다.
재판부는 “강 씨 아내와 석방 후에 태어난 아이들도 고통받았다”며 아내에게 1억원, 강 씨의 부모에게 각 1833만 원, 두 자녀에게 각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결론내렸다.
이날 ‘유서대필 사건’을 담당해 강 씨를 기소했던 검사들은 배상 책임을 면했다. 재판부는 수사과정에서 검사들이 진술을 강요하고 강 씨의 변호인 접견을 방해하는 등 일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범행 당시로부터 26년이 흘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고 검사들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 논리 대로라면 허위로 유서를 감정한 필적감정인의 행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 그러나 재판부는 “허위 감정을 토대로 유죄 판결이 내려져 오랜 기간 이어지던 상황에서 강 씨가 배상을 요청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국가와 필적감정인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선고가 끝난 뒤 강 씨 측 대리인단인 송상교 변호사는 “사건 조작을 전체 지휘했던 당사자들에 대해 책임을 부정하고 수사의 틀 안에서 움직였던 필적 감정인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건 매우 유감이다”고 밝혔다.
‘유서 대필 사건’은 1991년 5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 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면서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ㆍ투신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숨진 김 씨의 상의에서 나온 유서 2장의 필적이 김 씨의 것과 다르다며 전민련 동료였던 강 씨를 작성자로 지목했다. 국과수는 유서 2장의 필적이 강 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자살방조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 씨는 이듬해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7년 11월 “김 씨가 유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심 권고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09년 서울고법은 재심을 결정했지만, 검찰의 재항고로 실제 재심은 2012년 12월에서야 열렸다. 재심 결과 서울고법은 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지난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강 씨 측은 그해 11월 “결론을 정해 놓은 꿰어맞추기 수사, 폭행ㆍ협박 등 가혹 행위 피의자의 기본적 방어권 침해 등 위법한 수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31억 원 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yeah@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