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대전)=박병국ㆍ최준선 기자] 안철수 전 대표가 4일 국민의당 최종후보로 확정됐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완주하지 못했던 길 위에 5년 만에 다시 올라섰다.

▶의대시절 사회에 눈뜨다=안 전 대표는 1962년 2월 26일 부산 진구 범천동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의대 재학 시절 진료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회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로 초등학생 손녀와 단둘이 살며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던 할머니를 꼽았다. 아들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고 며느리는 집을 나간 후, 초등학생 손녀가 신문배달을 해 할머니를 부양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된 손녀는 가출을 했고, 할머니는 굶어 돌아가신 채 발견됐다. 안 후보는 “소설보다 잔인한 비극을 경험했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 해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깊어졌다”며 이날을 회고 했다.

▶‘의사와 프로그래머 사이에서’=88년 초 ‘브레인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다. 안철수 후보는 당시 의대 박사과정 중이었다. 마침 컴퓨터를 익히고 있던 안철수 후보는 바이러스를 분석해서 이를 퇴치할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탄생한 백신은 월간지를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잡지사를 통해 수소문 하는 사람, 직접 찾아오는 사람, 새벽에 전화를 걸어 고쳐달라고 하소연 하는 사람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의사 겸 백신 프로그래머로서의 생활은 7년간 지속됐다. 안 전 대표는 군의관 복무를 마친 다음 의사로서의 삶보다 더 큰 자부심과 보람, 사명감을 느낄 수 있었던 컴퓨터를 택했다. 안철수 연구소에서 만든 백신 프로그램은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무료로 보급되었고 기업체와 관공서에는 유료로 판매되었다. ▶’청춘들의 멘토가 되다‘=안 전 대표는 2005년 3월 창립 10주년 기념일을 기해 회사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났다. 퇴임 후 안철수 후보는 다시 새로운 도전의 길에 올랐다. 경영학을 배우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 석사과정에 지원해 합격했다. 이후 그는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답변은 언제나 취업, 성적, 스펙이었다. 청년들의 좌절과 방황이 심해지는 모습에 안 전 대표는 고민했다고 한다. 그후 안 전 대표는 청춘콘서트를 열며 청년들을 직접 만났다. 안철수 신드롬이 생겼다. 서울 시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새정치를 꿈꾸며 정치판에 뛰어들다=안 전 대표는 ‘새로운 정치’를 꿈꿨다고 한다. 그는 2013년 4월 실시된 노원 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섰다. 60%가 넘는 득표율로 국회에 입성한 안 전 대표는 2014년 2월 김한길 전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2014년 7월 재보선에서 패했고, 안 전 대표는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물러났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비대위 체제를 거쳐 문재인 대표 체제가 됐지만, 패배에 대한 책임 논란이 있었고 당 혁신을 둘러싸고 마찰이 빚어졌다. 안 전 대표는 이때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총선 4개월 전이었다. 안 전 대표가 탈당한 이후 연이은 탈당이 이뤄졌다. 안 전 대표는 총선 2개월을 앞두고 국민의당을 만들었다. 안철수ㆍ천정배 공동대표 체제였다. 국민의당은 총선에서 호남을 석권했다. 정당명부 투표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