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건 내용에 대한 본질적 해명보다는 유출 경위 문제 삼아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 유출 당시 대응과 판박이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최순실 비선 군 인사개입 의혹에 대해 전면 부정하는 등 한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의 현실 인식이 국민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소설 같은 최순실 관련 각종 의혹이 하나하나 현실로 밝혀지고 있어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라는 불신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그런데 군은 이번 의혹에 대해 “아니다”라고만 일관, 오히려 의혹을 키우는 모양새다.
한 장관은 군 인사개입 의혹과 관련해 “그 진위를 정확하게 확인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군 내부 사정을 유출한 당사자를 찾아내 처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돼 군 수뇌부와 국민들의 현실 인식에 큰 차이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 장관은 이날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지면서 비선 실세의 군 인사개입 의혹 내용을 담은 문건 관련 의혹에 대한 해명에만 급급했다.
한 장관은 최순실 비선 군 인사개입 의혹의 핵심인 조현천(육사 38기) 현직 기무사령관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전면 부정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추천해 기무사령관이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현천 사령관은 제가 추천했다. 국군사이버사령부가 굉장히 어려울 때 조현천 사령관이 그곳을 정리하는 역량을 보고 제가 추천해서 된 것”이라며 최순실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정말 엄중한 상황에서 오직 군심을 결집하고 지휘관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기강을 확립해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는데 이런 일이 불거진 것에 매우 분노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군 내부 사조직 알자회 일원인 추모 국장(육사 41기)이 자신의 누나와 최순실 간의 친분을 이용했다는 의혹, 추 국장이 알자회 ‘골수’ 인물로 알려진 조현천을 기무사령관에 천거했다는 문건 내용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문건은 기무사령관에 내정된 조 장군이 군 내부 인사정보를 추 국장에게 제공했고, 추 국장은 국정원 보고 형태로 청와대 측에 제공했다는 의혹도 담고 있다.
또한 문건에는 조 기무사령관이 내년 4월 육군참모총장에 내정됐다는 둥 군 고위직의 향후 인사 전망도 다루고 있다. 문건 내용 자체가 군 고위직이 아니면 작성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한 장관은 오히려 “25년 전에 조치를 취해 유명무실해진 것을 최근 국내 상황이 혼란기라는 데 주목해 다시 부각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몇몇 장군급 장교들이 이런 제보를 모 측에 하고, 그런 데서 문건이 만들어지고 하는 것이 우리 장병들에게 정신적으로 못할 짓을 하는 것”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문건을 유출한 사람이 불순함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런 대응 방식은 이미 국민들이 여러 번 봐왔던 익숙한 장면이다.
문건 내용에 대한 본질적 해명은 하지 않은 채, 문건 유출 경위만 문제삼는다는 점에서 정윤회 문건 유출 당시 청와대 측 대응과 유사하다.
청와대 측은 정윤회 관련 의혹이 폭로됐을 당시 문건 내용을 허위로 규정하고, 문건 유출 혐의로 당시 박관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경정)을 처벌했다.
아울러 한 장관은 논란이 된 조 기무사령관 유임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조 기무사령관은 자신의 재임 중 기무사 관련 중대한 사건이 발생해도 교체되지 않는다는 문건 내용을 또 한 번 입증한 셈이 됐다.
사령관 보직자는 자신의 재임 중 큰 사건이 터지면 통상 교체가 논의된다.
그러나 조 기무사령관은 지난해 기무사 소속 A소령이 중국 정부에 국내 정보를 유출한 사건, 지난 10월 기무사 소속 B소령이 성매매 알선 중 적발된 사건 등 재임 중 중대한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계속 유임됐다.
한편, 한 장관은 알자회에 대해 유명무실해진 조직이라며 알자회 창립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알자회는 1976년 육사 34기 10여명이 처음 만들어 육사 43기까지 약 10개 기수 12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1992년 육군대학에서 교육받던 알자회 소속 육사 38기 소령 동기생들이 다투는 과정에서 알자회 실체가 드러났다. 당시 김진영 육군총장 지시에 따라 알자회 소속 장교들이 진급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한 장관은 “확인을 해보니 육사 34~41기까지 모두 1차 진급에서 대부분 탈락했고, 모두 보직도 조정됐다”면서 “42~43기는 당시 대위계급 이어서 특별히 (처벌대상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1992년 공개된 알자회 명단에 나온 장교 중) 장군이 11명이 있다. 육군 장군 330명 중 11명”이라며 “그 밑으로는 장군될 사람도 없었고, 조직도 없어졌기 때문에 조직적인 활동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자회 소속 인사들이 현재 일부 군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한편, 다른 사조직의 존재와 관련해 한 장관은 “제가 대령 때 육군본부에서 사조직을 모두 조사했는데 하나회, 알자회는 실체가 있지만 만나회, 나눔회는 실체가 없었다”고 말했다.